#비하인드 더 무브
아람코가 호르무즈 우회로를 1,000만 배럴로 키우는 이유
내용 요약중...
아람코 본사가 공격받은 전날, 사우디는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육상 원유 수송 능력을 2~3년 안에 1,000만 배럴까지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겉보기엔 증설 계획이지만 수출로가 막혀도 계속 흘려보낼 예비 경로를 깔려는 쪽이고, 가스관을 7~8주간 원유 수송에 돌리는 임시 조치가 먼저 나옵니다. 다만 얀부 항구의 선적 능력과 바브엘만데브 보안, 내년 5월까지 가스관을 되돌려야 하는 시간표가 이 계획의 속도를 좌우할 겁니다.
비하인드 더 무브
2026년 10월 15일 오후 4:00


요약
사우디가 동서 송유관 용량을 1,000만 배럴까지 키우고 가스관을 원유 수송에 돌리겠다고 한 발표는 겉보기엔 증설 계획이지만, 실제 목적은 호르무즈가 막혀도 수출이 멈추지 않게 하는 데 있습니다.
다만 파이프라인 용량을 늘려도 얀부 항구에서 배에 싣는 능력이 병목이라, 1,000만 배럴의 효과는 항만과 저장 시설이 함께 커지는 속도에 묶여 있습니다.
여기에 홍해로 나간 원유도 바브엘만데브를 지나야 하고, 내년 5월까지 가스관을 되돌려야 하는 시간표까지 겹쳐 있어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본사 피격 하루 전, 리야드에서 나온 1,000만 배럴
10월 13일 밤, 사우디 동부 다란의 아람코 본사 행정동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로이터가 전한 소식통 설명에 따르면 CEO 집무실이 있는 최상층 세 개 층이 크게 파손됐고, 화재는 여러 층으로 번졌습니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제한적인 화재'가 났을 뿐 인명 피해는 없다고 밝혔는데요. 직원들은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일부 운영 업무는 해외 사무소로 옮겨졌습니다.
그 하루 전 리야드에서는 다른 숫자가 나왔습니다. 제25회 세계석유회의에 참석한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이 향후 2~3년 안에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육상 원유 수송 능력을 하루 1,000만 배럴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겁니다. 얼핏 보면 공격과 무관한 장기 증설 계획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두 사건을 나란히 놓으면 이 발표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아람코의 아민 나세르 CEO는 같은 회의에서 상업용 육상 원유 재고가 60억 배럴을 밑돌고 있고, 이 재고를 다시 채우는 데 최대 2년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호르무즈가 완전히 다시 열리기 전까지 에너지 공급망 압박이 더 심해질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내놨고요. 아람코가 지금 키우려는 것은 더 많은 수출량이 아니라, 바닷길이 막혀도 계속 흐르게 만드는 경로입니다.
파이프라인보다 어려운 건 배에 싣는 일
동서 송유관은 사우디 동부 아브카이크 유전지대와 홍해 얀부 항구를 잇는 1,200km 관로입니다. 1981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호르무즈 해협을 피해 원유를 내보내려고 깔았고, 설계 용량은 하루 700만 배럴입니다. 지난 9월 10일 이라크에서 날아온 드론 공격으로 펌프장이 손상되며 가동이 멈췄고, 9월 22일 낮은 수송량으로 다시 돌기 시작해 10월 6일 기준 하루 580만 배럴까지 회복했습니다.
이번에 장관이 꺼낸 카드 중 눈에 띄는 건 새 관을 깔겠다는 게 아니라 기존 천연가스관을 원유 수송에 돌리겠다는 쪽입니다. 7~8주면 하루 120만 배럴을 추가로 흘려보낼 수 있고, 투자를 더하면 300만 배럴까지 늘릴 수 있다는 구상입니다. 아람코는 정부와 함께 이 관로를 원유와 가스 어느 쪽으로도 쓸 수 있는 이중 용도 체계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내년 5월까지 관을 세척해 여름철 가스 수요에 맞춰 원래 용도로 돌려놔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런데 육상 네트워크를 아무리 늘려도 마지막 관문은 얀부 항구입니다. 얀부 북부와 남부 터미널을 합친 명목 선적 능력은 하루 450만 배럴 안팎이고, 실제 운영 가능한 수준은 400만~470만 배럴로 평가됩니다. 파이프라인이 700만 배럴을 실어 보내도 항구가 그만큼 배에 싣지 못하면 나머지는 탱크에 쌓이는 수밖에 없죠. 1,000만 배럴은 관로 하나의 용량이 아니라 육상 수송 체계 전체의 목표치이고, 지금 가장 좁은 구간은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항구입니다.
지난 9월 관로가 멈췄을 때 얀부의 원유 재고가 1,500만 배럴 아래로 떨어졌다는 추정도 나왔습니다. 하루 350만 배럴 안팎을 수출한다고 치면 닷새 남짓 버틸 수 있는 양이었던 셈입니다. 아람코가 해외 저장 시설 확대를 함께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관로만 늘리고 항구와 저장 시설이 따라오지 않으면 확장 효과도 그만큼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회로 끝에 또 하나의 좁은 문
홍해로 나간 원유도 목적지에 닿으려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야 합니다. 후티 반군은 지난 7월 사우디 유조선 통행을 막겠다고 밝혔고, 9월에는 예멘 서부 해안과 홍해 섬들을 장악하며 이 해협의 예멘 쪽 통제권을 넓혔습니다. 지난 8월에는 얀부 서쪽 63해리 지점에서 사우디 국적 유조선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갑판에 불이 나기도 했습니다.
얀부가 사우디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절대적입니다. 지난 6월 이후 얀부에서는 하루 400만 배럴 넘게 실려 나갔는데, 1년 전 같은 기간의 97만 배럴과 비교하면 네 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사우디 해상 수출의 90% 이상이 이 한 항구를 거치는 구조가 됐다는 분석도 나왔고요. 호르무즈를 피하려고 만든 우회로가 이번에는 얀부 한 곳과 바브엘만데브 한 곳에 수출을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국 1,000만 배럴 계획의 성패는 관로 증설 속도보다 항만과 저장 시설, 홍해 보안이 함께 따라오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우디가 국제 투자자와 쿠웨이트 참여까지 검토하는 것도 인프라를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로 묶어 두려는 계산으로 읽힙니다. 평시에 쓰지 않는 예비 용량을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다만 23년이라는 기간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 부담, 내년 5월까지 가스관을 되돌려야 하는 시간표가 겹쳐 있어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관로와 항만, 저장 시설이 같은 속도로 커질 수 있을지가 앞으로 23년간 이 계획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