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구조
약을 발견하던 방식이 끝나는 지점
내용 요약중...
2026년 8월 19일 모더나 주가가 177% 폭등했다. 개인 맞춤형 mRNA 암 백신의 임상 3상 성공 때문인데,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신약 성공이 아니다. AI가 환자의 암 돌연변이를 분석해 최적의 항원을 설계하고 mRNA라는 '프로그램'으로 체내에 전달하는 구조는 의약품을 '발견된 분자'에서 '계산된 코드'로 바꾸고 있다. 카탈린 카리코의 40년 좌절에서 출발한 mRNA 기술이 이제 제약 산업의 생산 방식을 '단일 환자 배치'라는 전례 없는 구조로 밀어붙이고 있다.
시대의 구조
2026년 8월 21일 오전 6:26


2026년 8월 19일, 모더나 주가가 하루 만에 177% 폭등했습니다. 시가총액으로 440억 달러가 하루 만에 추가된 셈인데요. 공매도 세력은 55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머크와 공동 개발한 개인 맞춤형 mRNA 암 백신 '인티스메란'이 흑색종 임상 3상에서 무재발 생존기간과 무원격전이 생존기간이라는 두 가지 주요 평가지표를 동시에 달성했다는 발표가 촉매였죠. 1,137명의 고위험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에서, 기존 표준 치료제인 키트루다 단독 요법보다 유의미한 생존 개선을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시장이 177%라는 수치에 반응한 진짜 이유는 임상 성공 자체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백신이 작동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의약품'이라는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거든요.
카탈린 카리코의 40년
발단은 2026년이 아닙니다.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죠.
1985년, 헝가리의 과학자 카탈린 카리코는 연구 자금이 바닥나자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헝가리 정부가 가족이 가져갈 수 있는 돈을 100달러로 제한했기 때문에, 그녀는 딸의 테디베어 인형 속에 돈을 꿰매 넣었죠. 그녀가 믿은 것은 mRNA, 즉 전령 RNA였습니다.
당시 학계는 mRNA를 '실패한 길'로 봤습니다. 체내에 주입하면 면역 체계가 외부 침입자로 인식해 강력한 염증 반응을 일으켰거든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그녀는 연구비 신청마다 거절당했고, 종신 교수직을 박탈당해 강등됐습니다. 2005년, 그녀와 드류 와이스만이 뉴클레오사이드 변형 기술을 발견했을 때도 Nature와 Science는 "새롭지 않다"며 논문을 거절했죠.
2013년, 학계에서 밀려난 그녀는 독일의 작은 바이오 기업 바이오엔텍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그녀의 기술이 코로나19 백신의 뼈대가 됐고,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40년의 좌절이 mRNA를 살렸고, mRNA가 이제 암을 공격합니다.
발견에서 계산으로
전통적인 제약은 '발견'의 산업이었습니다.
페니실린은 곰팡이에서 발견됐습니다.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됐죠.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도, 머크의 키트루다도, 수만 개의 분자를 스크리닝해서 가장 잘 맞는 것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개발됐습니다.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분자를 찾아내고, 시험하고, 검증하는 과정이죠.
그런데 인티스메란은 다릅니다. 이 약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계산'됐습니다.
환자의 종양 조직을 채취해 유전자를 시퀀싱합니다. AI 알고리즘이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돌연변이, 이른바 신생항원(neoantigen)을 분석합니다. 최대 34개의 항원을 식별한 뒤, 그 항원들을 공격하라고 면역 체계에 지시하는 mRNA 설계도를 합성하죠. 이 mRNA를 환자에게 주입하면, 환자의 세포가 그 설계도를 읽고 항원을 만들어내며, 면역 체계가 암세포를 정밀 타격하도록 훈련받는 구조입니다.
왜 이것이 혁신적인가. 약의 설계도가 자연계에 존재하는 분자가 아니라, 환자의 데이터에서 계산되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제어하듯, mRNA가 면역 체계를 프로그래밍하는 구조거든요. 이런 의약품을 '소프트웨어 정의 의약품'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모더나의 스테판 반셀 CEO가 "mRNA 과학의 비범한 이정표"라고 부른 것은, 임상 수치가 아니라 이 구조가 작동한다는 증명이 처음 나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론 머스크도 같은 맥락에서 "인공 RNA를 통해 질병 치료를 소프트웨어 문제로 변모시켰다"고 평했죠. 약이 분자가 아니라 코드가 되는 순간, 제약 산업의 지형이 바뀔 수 있다는 얘깁니다.
단일 환자 배치
소프트웨어 정의 의약품이 직면하는 가장 큰 장벽은 제조입니다.
전통적인 제약은 규모의 경제에 기반합니다. 하나의 공장에서 수백만 알의 약을 찍어내니 단가가 떨어지죠. 하지만 인티스메란은 환자 한 명당 하나의 배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종양 시퀀싱, AI 설계, mRNA 합성, 지질 나노입자(LNP) 캡슐화, 품질 검사, 냉동 물류까지. 전 과정이 한 명을 위한 맞춤형인데요.
이를 '단일 환자 배치(Batch of One)'라 부릅니다. 제약 산업 100년 역사에서 본 적 없는 생산 방식이죠.
제조 시간은 과거 8~10주에서 최근 4주 미만으로 단축됐습니다. 모더나가 매사추세츠주 노우드에 구축한 전용 시설이 원료 생산부터 완제품까지 한 곳에서 처리하는 통합 제조 루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1억 4천만 달러를 추가 투자해서 2027년 상반기까지 확장 중인데요.
비용은 여전히 높습니다. 개인 맞춤형 암 백신 1인당 예상 비용은 약 9만 2천 달러, 한화로 약 12억 원입니다. 같은 맞춤형 치료인 CAR-T 세포 치료제가 37만~47만 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지만, 전통적인 항암제와 비교하면 여전히 비싸죠.
FDA도 맞춤형 규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2026년 초 '플랫폼 기술 지정' 제도를 통해, 환자마다 성분이 다른 제품을 매번 새약으로 승인하는 대신 검증된 제조 공정과 알고리즘을 '플랫폼'으로 인정하고 있죠. 규제의 기준이 '제품이 무엇인가'에서 '이 제품을 만드는 프로세스가 신뢰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머크의 계산
머크가 모더나와 10년 넘게 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이유가 단순한 선의만은 아닐 겁니다.
머크의 핵심 자산인 키트루다는 2025년에만 317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약왕'입니다. 그런데 2028년, 핵심 물질 특허가 만료합니다.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암젠 등이 바이오시밀러 출시를 준비 중이죠. 과거 휴미라가 유럽에서 출시 1년 만에 가격이 80% 폭락한 전례를 생각하면, 키트루다의 매출 하락은 피하기 어려운 절벽입니다.
인티스메란은 이 절벽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습니다. 키트루다와의 병용 요법으로 승인받으면, 키트루다 단독이 아니라 '키트루다 + 인티스메란'이라는 새로운 표준 치료가 만들어지거든요. 바이오시밀러가 키트루다의 성분을 복제할 수는 있어도, 인티스메란과의 병용 조합은 복제할 수 없습니다.
머크는 2025년 9월 키트루다의 피하주사 제형인 '키트루다 Qlex'를 FDA 승인받았고, 독립적인 항암 사업부를 신설하는 등 다각적인 방어 전략을 구사 중입니다. 인티스메란은 그 퍼즐의 한 조각이죠.
물론 이것이 머크의 유일한 전략은 아닙니다. 다이이찌 산쿄와의 ADC 협력, 대규모 M&A 등 차세대 파이프라인 확보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죠. 하지만 인티스메란이 가진 의미는 다릅니다. 기존 자산의 수명을 연장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진입하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에서요.
허들
모든 암에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티스메란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종양에 충분한 수의 돌연변이가 있어야 합니다. 돌연변이가 많은 흑색종이나 흡연 관련 폐암에는 유리하지만, 돌연변이가 적거나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주도하는 암에서는 표적이 제한될 수 있죠. 시티그룹이 지적한 것처럼, 흑색종의 성공을 방광암이나 신장암으로 단순 확장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비용과 접근성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환자당 비용이 9만 달러를 넘는 상황에서, 메디케어 같은 공공 보험의 상환 정책이 어떻게 정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백신을 투여한 환자가 재발하지 않을 경우에만 전액을 청구하는 '가치 기반 계약'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표준 모델로 자리잡지는 않았죠.
지적재산권도 복잡합니다. AI가 신생항원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의 특허 소유권은 미묘한 영역입니다. 주요국 법원이 "발명자는 반드시 자연인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AI가 예측한 결과에 대해 인간의 창의적 기여를 입증해야 하죠. 모더나와 아르부터스 간의 LNP 특허 분쟁도 2026년 3월에야 최대 25억 달러 규모로 합의됐습니다. mRNA 백신의 핵심 전달 기술인 LNP의 지적재산 지형은 여전히 복잡합니다.
2026년 8월 19일의 177%는 단순한 주가 숫자가 아닙니다. 발견된 분자를 찾아내던 제약 산업이, 환자의 데이터를 읽고 코드를 계산해 내는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관찰이기도 하죠. 카탈린 카리코가 40년 전 테디베어에 돈을 꿰매 넣고 미국으로 건너갈 때 상상했던 세계가 이것이었을 겁니다.
다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단일 환자 배치 제조의 비용을 어떻게 낮출 것인가, AI가 설계한 약의 규제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맞춤형 치료의 접근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기술의 성공과는 다른 차원의 과제입니다.
어쩌면, 의약품이 소프트웨어처럼 설계되는 시대가 오면, 약값을 정하는 방식도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약의 가격이 천연물의 희소성이 아니라, 계산 능력과 제조 속도의 함수가 되는 시대. 그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177%라는 숫자가 말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