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디깅 클럽
삼성전자, 20년 만에 미국 나스닥 상장을 다시 고민하는 이유
내용 요약중...
2026년 7월 SK하이닉스 나스닥 ADR 상장 성공 직후 삼성전자의 미국 상장 검토설이 나왔다. 삼성은 부인했지만 2나노 파운드리에서 테슬라 AI5 테이프아웃 완료, HBM4 매출 10억 달러 돌파, 파운드리 월간 흑자 전환이 결정의 속도감을 만들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외국인 지분율 하락 속에서 복잡한 사업 구조와 노사 갈등이라는 장벽 사이의 삼성전자 선택을 짚어본다.
컴퍼니 디깅 클럽
2026년 7월 20일 오후 5:16


2026년 7월 13일, 한국 증시는 올해 일곱 번째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날이었습니다. KOSPI가 8.95% 폭락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10% 넘게 급락하는 와중에, 하루 전 나스닥에 상장한 SK하이닉스 ADR은 한국 본주 대비 51% 프리미엄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회사의 주식이 두 시장에서 완전히 다른 가격에 거래되는 기이한 장면이죠.
바로 그 다음 날, 블룸버그는 삼성전자가 미국 ADR(미국주식예탁증서: 해외 기업의 주식을 미국 예탁기관에 맡기고 그에 대응하는 증서를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방식) 발행을 위한 예비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즉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지만, 국내 매체 블로터는 경영진 지시로 실무진이 발행 절차와 손익을 점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2000년대 초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다 철회한 지 20년 만에, 삼성전자가 다시 미국 자본시장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겁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삼성전자입니다. 한국 증시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 거대 기업이 왜 지금 미국 상장을 고민하는지, 2나노 파운드리와 HBM4 경쟁력이라는 본업이 그 결정에 어떤 속도감을 더하는지,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반도체 제국의 무게와 복잡함
🏭 1938년부터 이어진 거대 기업의 궤적
삼성전자는 1938년 이병철 창업주가 설립한 삼성그룹의 전자 부문으로 출발해, 1980년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며 한국 경제의 심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6년 현재 시가총액은 약 1,627조 원,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1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전 세계 민간 기업 중 손에 꼽히는 체급이죠.
올해 들어 주가는 약 120% 상승했고, 2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89조 4,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10% 급증했습니다. 단순히 숫자가 크다는 것을 넘어, 한 기업의 분기 이익이 중견 국가의 연간 예산과 맞먹는다는 사실이 이 회사의 체급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이익의 약 94%를 메모리 사업부가 독식하고 있다는 점이, 다음 이야기의 출발점이 됩니다.
📊 메모리·파운드리·스마트폰, 세 개의 다른 얼굴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는 크게 DS(반도체) 부문과 DX(디바이스경험) 부문으로 나뉩니다. DS 부문 안에는 메모리(DRAM·NAND),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스템LSI(칩 설계)가 있고, DX 부문에는 스마트폰, 가전, 디스플레이가 속합니다. SK하이닉스가 메모리에 집중된 '순수 플레이'라면, 삼성전자는 반도체부터 스마트폰까지 아우르는 IDM(종합 반도체 기업: 설계·제조·패키징을 모두 갖춘 수직 계열화 모델) 구조를 가지고 있죠.
이런 다각화는 불황 시 상호 보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재는 메모리가 압도적으로 벌어들이는 반면 다른 부문은 상대적으로 고전하고 있습니다. 2분기 스마트폰 사업인 MX 부문은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요. 메모리 칩 가격 상승으로 스마트폰 원가가 급등했기 때문입니다. RAM 칩 비용이 800달러짜리 스마트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에서 23%로 뛰었습니다. 파운드리 부문도 2025년 약 6조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뒤, 2026년 6월에야 3년 만에 처음으로 월간 흑자를 달성했습니다.
역대급 실적 뒤에 숨은 시장의 불안
💰 89조 원 이익, 그런데 주가는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7월 7일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며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매출 171조 원, 영업이익 89조 4,000억 원입니다. 전년 동기 대비 1,810% 증가한 수치인데요. 그런데 발표 당일 주가는 7% 하락했습니다.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음에도 주가가 떨어진 이유는, 투자자들의 기대치가 이미 그보다 높았기 때문입니다.
올해 들어 삼성전자 주가는 약 120% 상승하며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6월 기록한 역사적 고점 대비 30% 가까이 하락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코스피의 선행 주가수익비율(Forward P/E: 향후 12개월 예상 이익을 기준으로 한 주가수익비율) 은 약 6.4배까지 떨어졌는데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이익은 폭증했는데 밸류에이션은 역대 최저라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죠.
📉 코리아 디스카운트, 외국인의 이탈
이 역설의 핵심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코스피의 선행 P/E가 대만 가권지수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은, 비슷한 반도체 중심 시장임에도 한국 기업에 대한 할인이 구조적으로 깔려 있다는 뜻입니다. 2026년 6월 MSCI가 한국의 선진국 지수 편입을 또다시 연기한 것도, 이 할인의 해소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외국인 지분율도 눈여겨볼 지표입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47.43%까지 떨어져 약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주가가 급등하는데 외국인이 매도하는 부의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는데요. 이는 펀더멘털 악화보다는, 주가 급등으로 인한 패시브 펀드의 기계적 리밸런싱과 차익 실현이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올해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누적 1,000억 달러 이상 순매도했습니다. 환차 노출 확대에 따른 헤지 수요까지 겹치면서, 주가가 오를수록 외국인의 매도 압력이 커지는 구조적 역설이 만들어졌습니다.
2나노와 HBM4, 본업이 만드는 속도감
🔧 테슬라 AI5 테이프아웃, 파운드리의 전환점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7월 초 테슬라의 차세대 AI 칩인 AI5의 테이프아웃(설계 최종 확정: 칩 설계가 마무리되어 제조 부서로 전달됨을 의미하는 반도체 개발의 핵심 마일스톤) 을 완료했습니다. 이 칩은 삼성의 최첨단 2나노 공정으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인데요. 업계에서는 당초 2나노 공정이 차세대 모델인 AI6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AI5에 2나노가 적용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삼성의 2나노 GAA(Gate-All-Around: 게이트가 전류 통로를 사면으로 감싸는 트랜지스터 구조로, 기존 FinFET 대비 누설 전류를 줄이고 성능을 높이는 차세대 기술) 수율이 60% 문턱을 넘어섰을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테슬라와 같은 대규모 물량을 필요로 하는 고객사의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이죠. 실제로 앤트로픽이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자체 AI 칩을 생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고, 구글의 10세대 TPU I/O 다이를 2나노로 제조하는 방안도 논의 중입니다. 삼성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첫 공장 가동 시점을 기존 계획보다 1~2년 앞당긴 2029년으로 조정하며, 평택·용인에 총 2,030조 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 HBM4 매출 10억 달러 돌파, 격차 축소
메모리 부문에서도 삼성전자는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2월 HBM4(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AI 가속기에 필수적인 초고속 메모리 칩) 양산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했는데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에 탑재될 HBM4 공급도 시작했습니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이미 12단 HBM4 양산 공급을 시작한 반면, 삼성전자는 아직 엔비디아로부터 본격적인 양산 주문을 받지 못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1분기 기준 58.1%로 1위를 차지했고,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각각 21%로 2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UBS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삼성전자가 HBM4를 통해 2027년에 점유율 1위(약 41%)를 탈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경쟁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셈이죠.
미국 상장, 유인과 장벽 사이
🌍 SK하이닉스의 성공이 보여준 '새 출구'
SK하이닉스가 7월 10일 나스닥에 ADR을 상장하며 265억 달러를 조달한 것은, 한국 반도체 기업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외국 기업의 미국 상장 역대 최대 규모였고, 상장 첫날 주가는 12.76% 상승하며 시가총액 1.22조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기관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 셈이죠.
SK하이닉스 ADR은 상장 3거래일 만에 한국 본주 대비 51% 프리미엄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업의 주식이 미국에서는 51% 비싸게 거래된다는 뜻인데요. 이는 ADR과 본주 간의 상호 전환이 제한되어 차익거래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프리스의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의 사례를 따라 ADR을 통해 미국에 상장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중요한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블랙록의 iShares MSCI South Korea ETF(EWY)에는 이틀 만에 19억 달러 이상이 유입되며, 글로벌 자본이 한국 기술 자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경로로 ADR을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 충분한 현금, 복잡한 구조, 그리고 소송 리스크
하지만 삼성전자가 미국 상장에 신중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자금 조달의 필요성이 낮다는 점입니다. 1분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약 147조 원에 달하는데요. SK하이닉스의 약 54조 원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규모입니다. 신주를 발행해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을 감수하면서까지 달러를 끌어모을 유인이 크지 않다는 뜻이죠.
두 번째 장벽은 복잡한 사업 구조입니다. SK하이닉스가 메모리에 집중된 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스마트폰·가전·디스플레이를 모두 아우릅니다. 미국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의 엄격한 공시 기준에 맞춰 각 사업부의 수율, 원가, 고객사 구성 등 민감한 정보를 상세히 공개해야 하는 부담이 큽니다. 미국 증권법상 집단소송 리스크와 사베인스-옥슬리법에 따른 내부통제 의무도 부담이 되는데요. 계열사와의 거래 내용까지 SEC 기준에 맞춰 공시해야 하는 구조적 어려움도 존재합니다. 노사 갈등 역시 미국 투자자가 우려하는 변수로 꼽히는데, 5월 노사 합의로 DS 부문 영업이익의 10.5%를 특별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한 과정 자체가 해외 투자자에게는 '한국형 지배구조 리스크'로 읽힐 수 있습니다.
관전 포인트와 리스크
🔄 내부 갈등, 분할론까지 겹치는 변수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DS 부문과 DX 부문 간 성과급 격차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메모리 사업부 직원의 총 보상액은 약 6억 원으로 추정되는 반면, 파운드리 부문은 약 2억 1,000만 원 수준에 그쳐 약 3배의 격차가 발생했습니다. 노조 조사에서 파운드리 부문 직원의 81.5%가 2년 내 이직 의향을 밝힐 정도로 내부 동요가 심각한 상태인데요.
이런 배경에서 DS 부문 분할 상장론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파운드리를 독립 법인으로 분리하면 애플이나 퀄컴 같은 고객사의 설계 정보 유출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TSMC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철학으로 글로벌 신뢰를 구축한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죠. 다만 분할은 주주 가치 희석과 사업부 간 시너지 감소라는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미국 ADR 상장과 DS 부문 분할, 두 가지 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동시에 논의되고 있는 셈입니다.
⚠️ 미국의 이익 공유 요구, 지정학적 압박
미국 정부의 압박도 새로운 변수입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6월 한국 통상교섭본부장과의 회담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AI 반도체 초과 이익을 미국이 공유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한국산 반도체를 대량 구매함으로써 한국 기업의 수익 증대에 기여했다는 논리인데요. 2026년 상반기 한국의 반도체 대미 수출은 91.3% 증가한 264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미국 상무장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국 내 메모리 칩 제조 공장 건설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습니다. 두 기업 모두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나, 현재까지 미국 내 첨단 DRAM이나 NAND 팹을 건설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수립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미국 상장이 이런 통상 압박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과거 1980년대 일본 반도체 사례에서 미국이 관세와 징벌적 조치를 통해 산업 이익을 재편했던 전례를 생각하면, 초과 이익 공유 요구가 가시화되는 초기 신호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2000년대 초, 삼성전자는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다가 "비용 대비 실익이 없다"며 철회했습니다. 당시 닷컴 버블이 붕괴하던 시장 불안과, 자체적인 현금 창출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그 결정을 이끌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SK하이닉스가 나스닥에서 265억 달러를 조달하고 ADR 프리미엄이 51%까지 치솟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삼성전자에게, '비용 대비 실익'의 계산은 20년 전과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미국 상장을 추진할지, DS 부문을 분할할지, 아니면 현재 체제를 유지할지는 아직 열린 질문입니다. 2나노 파운드리의 수율 안정화, HBM4의 엔비디아 양산 주문 여부, 파운드리 부문의 분기 흑자 전환, 그리고 미국의 통상 압박이 어느 방향으로 작용하는지가 향후 핵심 관전 포인트입니다. 20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본업의 기술 경쟁력이 결정의 속도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지켜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