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 더 깊게
연준이 인하해도 장기금리가 오르는 이유, 기간프리미엄
내용 요약중...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4.95%까지 오르고 30년물은 5.35%로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상한 점은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는 중에도 장기금리가 올랐다는 것인데요, 이 격차를 만드는 것이 '기간프리미엄'입니다. 돈을 오래 묶어두는 대가로 투자자가 요구하는 추가 금리인데요, QE 시절 0 아래까지 떨어졌다가 40조 달러 부채와 양적긴축 속에 정상화되는 중입니다. 이 개념을 알면 채권·주식·부동산이 왜 함께 흔들리는지 읽힙니다.
기본기, 더 깊게
2026년 9월 11일 오전 9:13


미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며칠 새 5.3%대를 훌쩍 넘었습니다. 2007년 이후 처음 보는 수준이에요. 10년물도 4.95%까지 올라 5% 관문 바로 앞에 섰죠. 그런데 이 흐름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미 연준은 지난해 11월부터 금리를 인하해 왔는데, 10년물 금리는 그사이 오히려 약 80bp(1bp=0.01%p)나 올랐다는 거예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데 장기 금리가 오른다니, 어딘가 뒤틀린 거죠. 이 역설의 열쇠가 바로 기간프리미엄(Term Premium)입니다. 채권 시장이 왜 유독 심하게 출렁이는지, 장기채와 단기채가 왜 따로 움직이는지를 설명해주는 개념인데요. 하나씩 풀어볼게요.
1년 예금과 10년 채권, 금리가 왜 다를까?
은행에서 1년짜리 예금보다 3년짜리가 금리를 더 주는 이유,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돈을 더 오래 맡기면 그만큼 내 돈이 '갇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은행이 그 대가를 이자로 얹어주는 거예요. 채권 시장도 똑같습니다. 10년짜리 국채를 산다는 건 돈을 10년간 묶어두겠다는 약속이고, 그만큼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거죠.
전문적으로 말하면 장기금리는 두 조각으로 나뉩니다. 미래 단기금리 기대치의 평균, 그리고 기간프리미엄. 뉴욕연준의 ACM 모델로 최근 10년물 금리 4.77%를 분해하면 기대단기금리 3.98%와 기간프리미엄 0.79%로 쪼개져요. 앞부분은 '연준이 뭐 할까'에 대한 시장의 예측이고, 뒷부분은 돈을 오래 묶어두는 '갇힘'에 대한 보상인 셈입니다.
왜 갇히는 게 문제일까요? 10년짜리 채권은 중간에 시장 금리가 오르면 갈아탈 수가 없어요. 옷을 10년치 미리 사두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사이 몸이 바뀌면 새로 나온 옷이 훨씬 좋아 보이는데, 난 이미 비싸게 산 옛 옷을 입고 있어야 하는 거죠. 이 '바뀔지 모르는 리스크'에 값을 매기는 게 기간프리미엄이에요.
*기간프리미엄: 장기 채권 보유에 따른 금리 변동, 인플레이션, 국채 수급 등 불확실성에 대해 투자자가 요구하는 추가 금리. 국채 수익률에서 미래 단기금리 기대치를 뺀 나머지 부분으로 추정되며, 모델에 따라 수치가 달라진다.
왜 10년간 0이었는데, 지금 다시 뛰어오르나?
그런데 지난 10여 년은 좀 특이한 시대였어요. 글로벌 중앙은행이 양적완화(QE)로 장기채를 직접 사들였거든요. 시장에 '무조건 다 사가는 슈퍼 갑'이 있으니, 투자자들이 굳이 덤을 크게 요구할 이유가 없었죠. 기간프리미엄은 0 근처로 내려앉았고, 2020년 7월에는 무려 -1.34%까지 떨어졌어요. 마이너스라는 건 돈을 10년 묶어줘도 보상을 받기는커녕 이자를 포기하겠다는 상태, 그만큼 안전자산을 찾는 돈이 넘쳤다는 뜻입니다.
이제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연준의 양적긴축(QT)이 장기채를 사주던 손을 걷었고, 미국 정부 부채는 40조 달러를 돌파했어요. 재정 적자도 GDP 대비 6% 수준으로 과거 수십 년 평균의 두 배가 넘죠. 살 사람은 줄고 팔 물건은 늘었으니 → 시장이 요구하는 '덤'이 다시 커지는 겁니다.
숫자로 보면 지금 ACM 기준 기간프리미엄은 대략 0.8% 안팎이에요. 모델마다 조금씩 달라서 0.5%라고 하는 곳도 있고 0.9%라고 하는 곳도 있어요. 그런데 1961년 이후 65년간의 평균은 1.4%가 넘습니다. 볼커 시절인 1984년 5월엔 5%를 넘기도 했죠. 즉 지금의 기간프리미엄은 '정상화가 절반쯤 온 상태'예요. 도이치방크는 이번 채권 매도를 위기가 아니라 2010년대의 '금융 억압'이 끝나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분석하는데요. 역사 좌표로 보면 지금이야말로 원래 자리에 가까워지는 중이라는 거죠.
재무부가 막아도 안 떨어지는 이유
그렇다면 정부가 나서서 장기채를 사주면 금리가 잡힐까요? 미 재무부가 실제로 시도했어요. 베선트 재무장관은 장기 국채 바이백(환매) 한도를 기존 20억 달러에서 60억 달러로 3배 늘렸는데요. 발표 직후 금리는 오히려 올랐습니다. 월가가 70억~100억 달러를 기대했던 터라 실망 매도가 나온 거죠. 도이치은행 전략가는 "계속 먹이를 줘야 하는 괴물을 만들었다"고 평했고, 다른 애널리스트는 "탱크전에 물총을 들고 나간 격"이라고 혹평했어요.
왜 이렇게 힘이 약할까요. 연간 국채 발행이 2조 달러를 넘는 시장에서 60억 달러는 티끌만 해요. 근본 원인이 수급이 아니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재무부는 수급을 다스릴 수는 있지만, 40조 달러 부채와 만성적인 재정 적자, 끈적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까지 바꿀 수는 없거든요. 시장이 매기는 '덤'은 결국 이런 것들에 대한 보상이니까요.
이 흐름은 실물로도 그대로 전해집니다. 미국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6.85%로 1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어요. AI 인프라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까지 몰리면서 9월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은 2,150억~2,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부와 기업이 같은 채권 시장에서 투자자의 돈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겁니다.
5%는 저항선일까, 새 중심축일까
주가도 함께 출렁입니다. 장기 금리가 오르면 미래 현금흐름을 깎아내리는 할인율이 높아지니까, 특히 먼 미래에 현금이 몰려 있는 AI·성장주 밸류에이션이 눌리는 구조예요. 글로벌 채권 시장도 함께 움직입니다. 영국 30년물은 5.82%로 1998년 이후 최고치, 일본 10년물은 약 30년 만에 처음으로 3%를 넘었고, 독일 30년물도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이에요. 한국 국고채 10년물도 4%대 중반까지 올라왔는데요. 한국은행 분석에서 국고 10년물 기간프리미엄이 1.4%까지 확대됐다고 해요. 미국 기간프리미엄에 한국 장기금리가 민감하게 동조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023년 10월엔 다른 양상이었어요. 10년물이 장중 5.02%를 터치하자 강한 매수가 몰려와 당일 4.83%로 급락했죠. 그때는 '5%면 싸다'는 반응이 나온 겁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관측이 우세해요. 30년물이 5.3%를 넘어도 2023년 같은 급반락이 나오지 않거든요. 기간프리미엄이 역사 평균보다 아직 낮다는 점에서, 남은 정상화 여정만큼은 장기 금리를 아래에서 받쳐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반대 시나리오도 있어요. 유가가 안정되고 재정 지출이 줄고 인플레이션 기대가 꺾이면 기간프리미엄도 눌릴 수 있죠. 재무부도 바이백 규모를 더 키울 패를 남겨뒀고요.
기간프리미엄의 정상화가 끝을 보이려면 재정과 물가의 방향이 먼저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 5%를 저항선이 아니라 새로운 운영 중심축으로 봐야 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요. 한편으로는 채권이 이자를 주는 본연의 자산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 자체가, 긴 안목에서는 주목해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