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넘긴 대가
어려운 문제 앞에서 고민하기보다 챗봇부터 켜는 습관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MIT AI 사용 연구위원회는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AI에 정답을 구하는 현상을 '인지적 항복'으로 규정했는데요. 문제 해결을 위한 '생산적 어려움'을 거치지 않으면 비판적 사고력과 기억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중국 중·고교생 2만 6,811명을 3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AI로 숙제를 한 학생들의 과제 점수는 18% 올랐지만, AI 없이 치른 시험 점수는 6개월 만에 20% 떨어졌습니다. 2년 뒤 입학시험과 대학 수능 성적도 각각 최대 24%, 18% 하락했는데요. 특히 평소 상위권이던 학생일수록 성적 하락 폭이 컸습니다.
기억력 문제도 확인됐습니다. MIT 연구에서 챗봇으로 글을 쓴 참가자들은 작성 직후 자신이 쓴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연구진은 AI가 사고 과정을 대신하면서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네트워크가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분석했습니다.
갈리는 대학가 대응
대학들의 대응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다트머스대와 하버드대, 오하이오주립대는 AI 활용 능력을 미래의 필수 역량으로 보고 교육을 확대하는 쪽입니다. 시안 베일록 다트머스대 총장은 AI 생산성 활용 능력이 대학의 생존 조건이라고 강조했고,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AI가 지식 발전 속도를 높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대로 사고력 저하를 우려해 선을 긋는 곳도 있습니다. 시카고대는 일부 필수 사회과학 수업에서 AI 사용을 금지하고 로스쿨 1학년의 전자기기 사용까지 제한했으며, UC 버클리 로스쿨은 과제 구상부터 수정 단계까지 AI 활용을 막았습니다. 뉴욕시와 LA 교육구는 초·중등생의 챗봇 사용을 대폭 제한했습니다.
현장의 혼란도 큽니다. MIT 학생신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46%가 대규모언어모델을 매일 쓰고 있었고, 90%는 과의존을 우려한다고 답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대학생 726명 중 76.4%가 AI 활용을 원하면서도 60% 이상이 문해력 악영향을 걱정했습니다.
평가 방식 바꿔야
해법으로 떠오르는 건 금지가 아니라 평가 체계를 바꾸는 겁니다. MIT 위원회는 과목별 AI 사용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제출물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토론과 구술 평가, 실습으로 이해도를 확인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버드대와 시드니대는 학습 과정에서는 AI를 장려하되 대면 시험 비중을 높여 실제 실력을 검증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구체적인 평가 지표도 제시됐습니다. AI의 제안을 신뢰하거나 거부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게 하고, AI 없이 종이에 직접 문제를 풀게 하며, 새로운 변수를 더한 시나리오에 지식을 적용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핵심은 AI 사용 여부가 아니라 사고의 첫 단계를 스스로 수행하는 능력입니다.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은 수학 최상위권 비중 23%로 5위를 기록했지만, 중국은 54%에 달했습니다. AI가 만들어낸 매끄러운 결과물 뒤에 숨은 실제 역량을 어떻게 측정할지가 교육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