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전한 AI’의 군사 작전 참여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이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연방기관 사용 중단 지시와 ‘공급망 위험’ 기업 지정이라는 강력한 제재를 받았습니다. 이번 갈등의 발단은 지난달 실행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생포 작전입니다.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가 방산 스타트업 팔란티어(Palantir)를 통해 이 작전에 활용된 사실을 앤트로픽이 뒤늦게 파악하고, 팔란티어 측에 기술적 문의를 한 것이 불씨가 되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두고 “민간 기업이 전쟁 수행을 좌지우지하게 할 수 없다”며 강하게 비난했고, 앤트로픽을 ‘좌파 광신도’ 기업으로 규정하며 모든 정부 기관에 사용 중단을 명령했습니다.
군사적 ‘완전 개방’ 요구와 윤리적 ‘안전장치’의 충돌
사태의 본질은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 범위를 두고 벌어진 입장 차이입니다. 미 국방부는 앤트로픽 측에 자사의 AI 모델에 대한 군사적 활용 범위를 ‘전면 개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군사 목적이라면 대규모 감시나 자율 살상 무기 체계를 포함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앤트로픽은 창립 때부터 ‘가장 안전한 AI’를 표방하며 윤리 강령인 ‘클로드 헌법’을 공개해온 회사입니다. 이들은 군사 작전 지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윤리적 경계를 넘는 사용에는 자사 기술이 쓰이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군사적 결정은 국방부 권한이지만, 기술 제공자로서의 윤리적 안전장치는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이러한 앤트로픽의 태도를 ‘오만’과 ‘족쇄’로 받아들였습니다. 군의 작전 자율성을 침해하고, 실리콘밸리의 이데올로기를 국가 안보보다 우선시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거죠. 한편 앤트로픽 입장에서는 국방부 요구를 무조건 수용할 경우, 유럽 등 인권 규제가 엄격한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잃고 핵심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업계를 가른 정치적 대립과 불확실한 미래
이번 사태는 AI 업계 자체를 양분시키고 있습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는 앤트로픽의 윤리적 고민에 공감하며 중재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xAI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xAI의 모델 ‘그록(Grok)’은 국방부의 모든 합법적 사용 요구를 수용하며 기밀 환경 사용 승인을 획득했고, 머스크는 앤트로픽을 강하게 비난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지지했습니다. 이처럼 실리콘밸리 내에서도 국가 안보와 기술 윤리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앤트로픽에 부여한 ‘공급망 위험’ 지정은 상징적인 조치를 넘어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지정은 미군과 거래하는 모든 업체가 앤트로픽과 상업 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제재 수단입니다. 6개월의 유예 기간이 주어졌지만, 협상이 결렬될 경우 앤트로픽의 미국 내 사업은 물론 동맹국과의 거래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민간 기술 기업과 정부 간의 이러한 힘겨루기는 AI가 사회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전형적인 갈등의 서막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