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낮췄더니 유통망이 멈추나
8월 1일부터 정부의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이 본격 시행되면서 의약품 유통 현장이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동일제제 제네릭의 최초 등재 산정률이 기존 53.55%에서 45%로 낮아졌는데요. 문제는 인하 폭만큼이나 정산과 재고 회수를 둘러싼 현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회수 대상 품목과 보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약국과 유통업체들이 사실상 업무를 멈춰 선 상태와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유통업계는 이번 약가 인하로 인한 행정·물류 비용이 실제 절감액보다 더 클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특히 약가 인하 폭이 작은 품목일수록 처리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요. 종합도매업체들은 반품 및 실물 회수를 위한 추가 인력 투입과 정산 지연에 따른 금융 비용까지 떠안아야 하지만, 이에 대한 보전 체계는 전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제약사들에게 유통마진 축소나 부담 전가를 자제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으며, 정부와 제약사의 신속한 실무 절차 마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제네릭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제약사들
이번 인하 정책은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 제약업계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와 필수의약품 공급 가산을 통해 제네릭 중심의 수익 구조에서 탈피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요. 다품목 제네릭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국산 원료 사용이나 직접 생산에 높은 약가 가산을 주는 방식으로 공급망 국산화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R&D 역량 고도화와 파이프라인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혁신형 인증을 받으면 약 33.3%의 파격적인 가산 혜택이 주어지지만, 연구개발비 비율 기준도 상향돼 투자 부담은 더 커졌습니다. 그러나 반복적인 제도 변경은 기업들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꼬이게 만들어 오히려 R&D 여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된 우려입니다. 실제로 2012년 대규모 약가 인하 당시에도 약제비는 줄었지만 소비자 의약품 비용 부담은 오히려 13.8% 증가했고, 기업들은 비급여 전환 등으로 우회 영업을 확대했습니다.
예측 가능한 약가 운영이 필요한 이유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약가 자체의 높낮이를 떠나 정책 변화의 예측 불가능성에 있습니다. 중소 제약사들은 단순 제네릭 매출이 급감하면서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정성까지 우려되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기업이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일정 범위 내 변동 시 인하를 유예하는 'R-zone' 도입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국의 의약품가격 규제계획(PPRS)처럼 정부와 산업계가 정기적으로 협의하는 민관 협의 체계 구축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와 제약 산업의 지속가능성은 양립할 수 있는 목표입니다. 다만 그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치들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정책의 선한 의도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