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이 지나도 멈추지 않는 묵념…9·11, 미완의 진실과 기억 사이

VnK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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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 전 수정 · 2026년 9월 12일 오전 1:16

발행: 2026년 9월 11일 오후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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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25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 추모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올해는 유독성 먼지로 숨진 이들을 위한 '일곱 번째 묵념'이 처음 추가되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관련 의혹과 뉴욕시 문건 은폐 등 미완의 진실도 함께 부상했습니다. 세대교체 속에서 9·11은 단순한 과거가 아닌 안보와 자유, 기억과 망각 사이의 현재진행형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25년이 지나도 멈추지 않는 묵념

2026년 9월 11일,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제로에 은빛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아메리칸항공 11편이 북쪽 타워에 충돌했던 오전 8시 46분을 기리는 첫 묵념이었는데요. 유가족들은 2,983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며 25년 전 그날의 슬픔을 되새겼습니다. 첼리스트 요요마의 연주와 함께 진행된 이름 낭독은 단순한 절차가 아닌 살아있는 기억 그 자체였습니다.

올해 추모식에서는 여섯 차례의 묵념에 더해 '일곱 번째 묵념'이 처음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유독성 먼지와 잔해에 노출되어 암과 호흡기 질환으로 숨진 구조대원과 주민들을 기리는 시간입니다. 뉴욕타임스는 관련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테러 당일 희생자 수를 이미 넘어섰다고 보도했는데요. 이제 9·11은 단순한 과거의 비극이 아닌, 지금도 이어지는 고통의 현재진행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태어나지 않았던 소녀가 이모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에 대한 영광을 이야기하며 추모하는 모습도 포착되었습니다. 세대를 넘어 희생자들을 기억하겠다는 의지는 여전히 살아있지만, 미국 인구의 약 30%인 1억 명 이상은 당시 상황을 직접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입니다. 기억이 역사로 전환되는 순간, 추모는 단순한 애도를 넘어 교훈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과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정치적 장면 속에서 드러난 미완의 진실

추모식장은 정치적 인사들로 채워졌습니다. JD 밴스 부통령과 조 바이든,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뉴욕에 모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버지니아 펜타곤 추모식에 참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전쟁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규정하며 정당성을 강조했는데요. 이는 과거 장기전에 반대했던 기조와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추모식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테러 개입 의혹과 관련해 유족들의 비판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은 관련 정부 문서의 공개를 촉구하며 진실 규명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뉴욕시의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당시 시 당국이 유독성 석면 등 치명적인 공기 오염 사실을 인지하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현장에 투입되었던 소방관과 주민들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질병에 시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셈입니다.

변화와 분열 사이, 미국이 안고 있는 과제

9·11 이후 미국은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공항 보안은 대폭 강화되었고, 정보기관의 감시 권한은 확대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이라는 긴 군사 개입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미국 사회의 분열을 만들어낸 시작점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갈등을 가속화한 분기점이라는 재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9·11은 이제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같은 기술 격변과 비교될 때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도 성인의 47%만이 이 사건을 생애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꼽았는데요. 이는 세대교체와 함께 사건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9·11은 미국인들에게 안보와 자유 사이의 균형, 그리고 기억과 망각 사이의 딜레마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불러내는 추모식은 매년 거행되겠지만, 그 이름 뒤에 숨겨진 미완의 진실과 사회적 상흔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는 앞으로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