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걱정하지 마.” SNS에서 만난 일본인 여성의 달콤한 말 한마디에 속아 수억 원의 돈을 날린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최근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일본인 여성은 물론 스님, 대학교 교직원, 심지어 금융감독원 직원까지 사칭해 68명에게 105억 원을 가로챈 대규모 피싱 조직을 적발했습니다. 조직원 49명이 검거되고 37명이 구속되는 등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 중인데요,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금전 사기를 넘어 온라인 신뢰를 철저히 이용한 정교한 심리 조작 범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뢰를 사고 파는 교묘한 수법
피해자들은 주로 텔레그램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일본인 여성으로 위장한 계정으로부터 접근을 받았습니다. 조직원들은 일주일에서 길게는 3개월에 걸쳐 꾸준히 대화를 나누며 온라인 연인 관계를 발전시켰습니다. 여성 조직원이 직접 전화통화까지 하며 목소리로 신뢰를 더했죠. 관계가 무르익었다고 판단되면, 본격적인 사기 수법이 시작됐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연애 적금’이었습니다. 함께 가상자산(코인)으로 적금을 들자며 피해자를 유혹한 뒤, 가짜 투자 사이트로 유도해 자금을 입금하도록 했습니다. 한 피해자는 이런 방식으로 한 달 만에 1억 1,500만 원을 잃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액의 이자를 주며 안심시킨 후, 점점 더 큰 금액을 요구하다가 연락을 아예 끊어버리는 패턴은 기존 ‘돼지 도살(Pig Butchering)’ 사기와 유사합니다.
변신을 거듭하는 사기꾼들의 얼굴
이 조직은 로맨스 스캠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수법을 바꿔 스님이나 대학 교직원으로 신분을 속였습니다. 사찰 건축 기금 모금이나 대량 구매 대행을 빌미로 돈을 받아챈 뒤, 약속한 물건은 보내지 않는 이른바 ‘노쇼(No-show)’ 사기를 벌인 것이죠. 이렇게 해서만 5억 원 이상의 추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또 다른 팀은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택했습니다. ‘카드 오배송’ 전화를 걸어 피해자에게 악성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한 뒤, 앱이 조작한 전화번호로 연결되게 해 금융감독원이나 검찰을 사칭하며 “명의도용 사건에 연루됐다”고 속여 현금을 갈취했습니다. 다양한 신분으로 변신하며 표적을 골라 공격한 이들의 수법은, 피해자들의 심리적 허점과 상황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치밀했습니다.
해외 거점 범죄와 국제 공조의 필요성
이 모든 범행의 배후에는 캄보디아 프놈펜 등에 거점을 둔 조직이 있었습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조직원들은 주로 20~30대였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고액의 수익에 현혹되어 불법성을 알면서도 가담한 경우가 많았죠. 벌어들인 돈 상당수는 현지 유흥과 도박으로 탕진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현재 경찰은 현지에서 검거된 중국인 총책의 송환을 캄보디아 당국과 협의하고 있으며, 아직 검거되지 않은 해외 체류 조직원들에 대해서는 여권 무효화 조치와 인터폴 적색수배를 통해 국제 공조 수사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번 사건은 피싱 범죄가 이미 국경을 넘어 조직화, 고도화되었다는 점을 뚜렷이 보여줍니다. 온라인을 통해 쉽게 다가오는 유혹에 대해 한 번 더 의심해보고, 개인정보와 금전 요구가 결합된 제안에는 극도로 경계하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