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분 만에 끝난 대피령, 남은 불안은 컸습니다
2026년 7월 28일 오후 5시 7분경, 경기 평택시 서탄면 오산공군기지(K-55)에서 백린 누출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정기 탄약 점검 중 탄두 안에 남은 잔류물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이로 인해 평택시는 오후 5시 37분, 인근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약 36분 뒤인 6시 13분, 대피령은 해제되며 소동은 일단락됐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사고 물질이 백린이라는 사실에 시민들의 공포는 상당했습니다.
백린은 공기 중에서 자연 발화할 수 있는 물질로, 피부에 닿으면 연소가 끝날 때까지 깊숙이 파고드는 치명적인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호흡기로 유입되면 호흡곤란은 물론 간과 신장까지 손상시킬 수 있어 민간 사용이 금지된 고위험 화학물질입니다. 당시 평택시는 재난 문자를 통해 피부 노출을 피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달라고 긴급 안내했고, 소방 인력 31명과 장비 9대가 현장으로 출동하는 등 긴장감이 고조됐습니다.
사실 이번 대피령은 미군이 사고 지점과 부대 경계 사이의 거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요청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현장 확인 결과 누출 지점은 부대 경계에서 300m 이상 떨어져 있었고, 유출된 물질도 80% 희석된 상태였습니다. 화학물질안전원 역시 대피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시민들은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과거 탄저균 사건의 기억, 불투명한 정보 공유
이번 사고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K-55 기지가 과거에도 유사한 논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2015년 4월, 이 기지로 활성화된 탄저균이 반입됐는데 당시 미국 국방부가 뒤늦게 통보해 한국 정부조차 반입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주권 국가로서의 정보 권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전례가 있었던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번 백린 누출 역시 구체적인 정보 공개가 미흡하다는 점이 시민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습니다.
현재 기지 내에 왜 백린이 존재하는지, 정확한 보유량과 누출 원인, 외부 환경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등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사항들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미군 측은 상황이 완전히 통제됐으며 위험성이 낮다고 밝혔지만, 정작 구체적인 측정 결과나 조사 데이터는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정보를 미군의 통보에만 의존하는 비정상적인 관계를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공동조사 요구와 풀어야 할 과제
사고 직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반도평화위원회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자주통일평화연대 등 여러 시민단체와 정당은 한미 공동조사를 즉각 실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미군의 일방적인 설명만으로는 사고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수질과 토양 오염 여부를 포함한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민변은 미군 당국의 공식 사과와 유감 표명까지 요구하며 사고 원인과 영향을 투명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사고 당사자인 미군이 위험성을 스스로 판단해 통보하는 현재의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환경부와 국방부, 지자체가 참여하는 민관 합동 조사단을 구성해 대기와 토양, 지하수 오염 및 주민 건강 영향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한미군은 사고 신고 2시간 35분이 지난 뒤에야 보도자료를 내놓는 등 정보 공개도 늦었습니다. 평택시민들은 재난 문자를 받은 순간의 공포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단순한 해명을 넘어선 과학적이고 투명한 조사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