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맺어진 AI 동맹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잠실야구장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지난 6월 7일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시구를 맡은 건데요, 이를 받아친 사람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었습니다. 엔비디아 창립 연도인 1993년을 뜻하는 93번 유니폼과 두산의 1896년을 의미하는 96번 유니폼을 맞춰 입은 모습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양사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사실 이번 회동은 경기장에서의 짧은 인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양사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김도원 두산그룹 최고전략책임자와 김민표 두산로보틱스 대표 등 주요 임원들이 식사 자리를 함께하며 협력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습니다. 박정원 회장은 이 자리에서 두산의 체질 개선 전략과 엔비디아 생태계 연계 계획을 직접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동박적층판에서 로봇 칩 테스트까지
두산과 엔비디아의 협력은 꽤 오래전부터 구체화되어 왔습니다. 두산 전자BG가 생산하는 고성능 동박적층판(CCL)은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입니다. 특히 차세대 플랫폼인 베라루빈 양산을 앞두고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절실한 상황인데요. 두산은 이미 증평과 김천 공장에서 관련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태국 신규 생산기지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후공정 분야에서도 협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두산테스나는 엔비디아의 언어처리장치인 그록3 웨이퍼 테스트 물량을 수주하며 기술 파트너십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소재부터 테스트 공정까지 양사는 AI 칩 생태계 안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2028년을 향한 피지컬 AI 동맹
이번 만남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부분은 로보틱스 분야의 미래 협력입니다. 두산로보틱스는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및 시뮬레이션 인프라와 자체 에이전틱 로봇 운영 체제를 연계해 산업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특히 젠슨 황 최고경영자의 장녀인 매디슨 황 수석이사가 최근 두산로보틱스 이노베이션센터를 직접 방문한 일은 양측의 협력이 얼마나 긴밀한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두산과 엔비디아는 2028년 산업용 휴머노이드를 공동으로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로봇 사업은 박정원 회장이 그룹을 중공업 중심에서 에너지와 반도체, 피지컬 AI로 재편하려는 체질 개선 전략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거대한 로드맵이 성공하려면 기술적 완성도와 시장의 실제 수요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하지만 전통 제조업의 노하우와 세계 최고 수준의 AI 인프라가 만나는 지점에서, 한국 산업계가 주목할 만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