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달러, 8년 만의 최대 폭락
2025년 미국 달러는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9.5% 폭락하며 2017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달러 인덱스는 지난해 말 108.45에서 12월 30일 기준 98.25로 떨어졌고, 연평균은 100.83에 그쳤습니다. 특히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직후 15% 급락하기도 했던 달러는 9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 이후 다시 하방 압력을 받으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반면 유로화는 14% 가까이 올라 1유로당 1.17달러를 돌파했는데, 이는 2021년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영국 파운드화와 일본 엔화도 달러 대비 강세를 보였습니다. 도이치방크의 게오르게 사라벨로스 분석가는 “올해 달러의 실적은 자유변동환율제 역사상 최악의 해 중 하나”라고 평가했고, 월가에서는 “최악으로 기록된 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트럼프 정책과 금리 인하, 이중고
달러 약세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무역 정책입니다. 4월 발표된 ‘상호관세’는 미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높였고, 달러가 가진 안전자산으로서의 매력을 떨어뜨렸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에 투자하면서 환헤지를 늘렸고, 이는 달러 공급을 늘려 가치 하락을 부추겼습니다.
거기에 연준의 금리 인하가 더해졌습니다. 연준은 9월 기준금리를 내렸고, 시장은 내년 말까지 0.5~0.75%포인트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 상승률을 이유로 금리 동결은 물론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고, 영란은행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통화 정책의 방향이 달라지면서 달러는 상대적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ING의 제임스 나이트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 연준이 글로벌 중앙은행의 흐름에 역행하며 강력한 통화완화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5월 임기가 끝나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후임으로 ‘충성파’를 지명할 경우 금리 인하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달러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케빈 해싯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충실할 것으로 보입니다.
2026년, 달러의 운명은?
월가 투자은행들은 내년에도 달러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유로화는 2026년 말 1유로당 1.20달러, 파운드화는 1파운드당 1.36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와 다른 주요국의 정책 차이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변수는 차기 연준 의장 임명입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적인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인물을 앉힌다면 달러 가치는 더 깊이 추락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인공지능(AI) 투자 붐으로 미국 경제 성장률이 유럽보다 빠르게 유지된다면 연준이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고 달러가 반등할 여지도 있습니다. 골드만삭스 전략가들은 “고용 둔화 우려나 추가 금리 인하, 미국 기술주 평가 조정 등이 동시에 발생하면 달러 하락폭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한편 달러 약세는 미국 수출업체에는 호재지만, 유럽 기업에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뉴욕 증시는 올해 S&P500 지수가 17% 상승하는 데 그친 반면 MSCI 전세계 지수(미국 제외)는 29% 올라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달러 패권의 흔들림이 2026년에도 계속될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