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이슈, 졸업사진 한 장에 담다
지난 9일 경기 의정부고등학교 교내에서 3학년 학생들이 졸업사진 촬영을 마쳤는데요. 학교 방송부 UHBS가 SNS에 공개한 70여 장의 사진은 온라인에서 순식간에 퍼지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학생들은 한 해 동안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인물과 장면을 직접 분장하고 소품을 만들어 재현했는데, 그 정교함이 마치 전문 코스튬 연출을 방불케 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건 2026 북중미 월드컵 이후 논란이 됐던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모습이었습니다. 한 학생은 칠판에 'FIGHT'라고 적고 선수를 나무라는 장면을 그대로 옮겼고, 옆에서는 손흥민 선수로 분장한 학생이 감독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연출을 더했습니다. 이른바 '싸워 전술'로 회자됐던 순간을 학생들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것이죠.
스포츠계뿐 아니라 경제와 대중문화 이슈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지난 6월 방한해 국내 기업인들과 '깐부치킨'에서 회동했던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검은 가죽 재킷 차림과 그래픽카드 소품은 물론, 옆에 치킨으로 분장한 학생을 배치해 현장감을 살렸습니다. 걸그룹 리센느의 미나미가 유행시킨 '거제, 야호'와 갸루 메이크업, 넷플릭스 '참교육'의 교권 보호국 감독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과 엄흥도까지 당대 문화를 압축해 보여주었습니다.
17년 된 전통, 웃음 뒤에 숨은 세대의 기록
의정부고의 이색 졸업사진은 2009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17년째를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그해를 기록하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는데요. 매년 어떤 인물이 등장할지, 어떤 이슈를 골라낼지 기대하는 누리꾼들이 생길 정도로 이 학교 졸업사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기부터 정치 풍자가 강했던 탓에 논란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2017년에는 특정 정치인을 날카롭게 풍자한 사진이 보수단체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했고, 일부 학생과 교사가 경찰 조사까지 받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의 상처를 교훈 삼아 학교 측과 학생자치회는 촬영 수위를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정치적 이슈나 인종 비하, 학교 품위를 훼손할 수 있는 소재를 사전에 걸러내고 대중문화 중심으로 주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웃음과 풍자 사이, 세대가 그리는 시대상
졸업사진이 단순히 웃음을 주는 이벤트에서 그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고등학생들이 직접 선정한 주제들은 그해의 사회적 관심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거든요. 학생들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며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고, 방송부를 중심으로 기획과 촬영까지 도맡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따라 하기보다는 왜 해당 인물이나 사건이 주목받았는지를 이해하게 되죠.
물론 여전히 적절성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재미있는 패러디이고 어디부터가 지나친 풍자인지에 대한 경계는 늘 존재하니까요. 다만 학생자치회와 담임교사가 1차적으로 내용을 검토하는 지금의 방식은 창의성을 존중하면서도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는 세대의 노력으로 읽힙니다. 의정부고 졸업사진이 매년 화제가 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세대만의 기록 방식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