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상 필요” 인정한 법원 판단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추진 중인 통합 제련소 ‘크루셔블 프로젝트’에 청신호가 켜졌다. 24일 법원은 영풍그룹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중단을 요구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크루셔블 프로젝트를 위한 유상증자는 경영상 필요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손잡고 핵심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전략적 투자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7월 2조 8,6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증자 자금은 크루셔블 합작법인(JV)을 통해 미국 제련소 건설에 투입된다. 미국 전쟁부(옛 국방부)가 JV의 최대주주(40.1%)로 참여했고, 고려아연은 증자를 통해 JV에 지분 10%를 넘긴다. 법원은 “미국 정부가 직접 참여한 점을 감안하면, 이 사업은 단순 경영권 방어가 아니라 국가 경제안보 차원의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지분구도 바뀌고, 내년 주총 승부 예고
법원 판결로 유상증자가 차질 없이 진행되면 고려아연의 지분구도가 크게 바뀐다. 현재 영풍·MBK 측은 43.4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최윤범 회장 측은 18.76%다. 하지만 JV가 신주를 인수하면 최 회장 측 지분은 18.76%에서 27.5%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여기에 한화, LG화학, 국민연금 등 우호 세력의 지분을 합하면 45% 중반에 달해 영풍·MBK 측을 넘어설 수 있다.
내년 초 열릴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을 둘러싼 표 대결이 예상된다. 집중투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양측 모두 일부 이사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JV는 사외이사 2명을 선임할 수 있어 최 회장 측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 업계에서는 “법원 판결로 인해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美 핵심광물 공급망의 ‘전략적 파트너’로
크루셔블 프로젝트는 단순한 해외 투자를 넘어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재편에서 고려아연이 전략적 파트너로 부상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세계 유일의 아연·연·동 통합공정 기술과 높은 유가금속 회수율을 자랑한다. 울산 온산제련소에서 이미 22종의 비철금속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기술을 미국 현지에 이전할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 내 핵심광물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고려아연과의 협력은 미국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크루셔블 프로젝트가 완공되면 아연, 연, 동은 물론 반도체용 황산, 방산용 안티모니 등 13종의 금속을 연간 54만톤 규모로 생산할 수 있다. 미국 내 AI, 전기차, 배터리 산업 수요를 직접 충당하며,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영풍·MBK 측은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과 투자 계약의 공정성에 우려가 있다”며 유감을 표명했지만, 향후 추가 소송 등 법적 공방은 지속될 전망이다. 한편 고려아연은 법원 판결에 감사를 표하며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