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조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의 미래를 꿈꾸다
서남권 800조 원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민관의 힘을 모으며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범시민추진위원회가 출범했는데요. 지역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클러스터 성공을 기원하는 민간 동력이 마련된 겁니다. 이와 함께 중흥그룹의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은 반도체 및 AI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해 100억 원을 기부하며 기업 차원의 지원에도 시동을 걸었습니다.
정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수도권에 쏠린 산업 구조를 지역으로 다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TSMC 구마모토 클러스터 사례가 주목받고 있는데요. 기업 주도와 정부 지원, 지자체 서비스가 결합돼 27개월 만에 칩 생산에 성공하고 수만 명의 고용을 창출한 모델을 벤치마킹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정은승 반도체전략위 공동위원장은 아예 30년 후를 내다보는 계획도시를 제안하며 인구 700만~1,000만 명, 지역내총생산 1,000조 원을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반도체 팹 하나가 125개 이상의 협력업체와 9,500여 명의 인력을 끌어들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지역 경제 전반을 뒤바꿀 수 있는 파급력입니다.
'선예산 후설계' 논란과 책임 소재 우려
기대가 커지는 만큼 절차적 논란도 거섭니다. 정부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 4년간 매년 1조 5,000억 원씩 총 6조 원을 전액 국비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문제는 세부 사업 계획 없이 예산부터 편성된 '선예산 후설계' 방식입니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800조 원의 민간 투자가 예상되는 사업임에도 설계비나 수용비 등 구체적인 산출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한성숙 국무총리는 프로젝트가 발표와 동시에 시작된 사업이라, 실무진이 필요한 부분을 정리해 예산을 책정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더 큰 우려는 사업 통제 장치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총사업비 관리 대상 제외를 요청한 상태이고, 법적 근거가 될 특별법 개정도 아직 미완성입니다. 여기에 공무원 면책 조항까지 검토되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데요.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적극 행정에 대한 징계와 문책을 제한하는 내용은 졸속 추진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총리는 공직자의 적극적 업무 수행을 위해서라며 감사원과 절차 강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반박했지만, 재정 통제와 책임 소재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기존 산업과 연결해야 할 숙제
클러스터의 성공은 단순히 공장을 짓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역이 이미 보유한 산업 기반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관건인데요. 이재창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원은 석유화학과 세라믹 등 기존 산업을 반도체 중심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단순 제품 생산에서 벗어나 정제 기술과 고도화 기술을 확보해 반도체 소재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서형빈 전략산업국장은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며 산업화 과정의 높은 진입장벽을 극복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비전만큼 인재 양성과 교육 체계 개편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800조 원의 거대한 투자가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지역의 기존 기술을 미래 산업과 연결하고 인재를 키우는 작업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호남의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제 시작 단계인 만큼, 민관의 협력과 함께 절차적 투명성도 함께 갖춰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