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DB그룹 김준기 창업회장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위장 계열사를 15개나 은폐하고, 이를 통해 대기업집단 규제를 회피하면서 사익을 추구했다는 중대한 혐의입니다. 1999년부터 약 15년 이상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은폐 행위는 단일 사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에 해당합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대기업집단 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심각한 위반이라고 판단했는데요,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봤습니다.
알고 보면 하나의 시스템
사건의 핵심은 ‘동곡사회복지재단’과 그 산하 15개 회사입니다. DB그룹은 이들 재단과 회사를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자료에서 고의적으로 빼놓았습니다. 겉으로는 DB와 무관해 보이지만, 실상은 김준기 회장의 지배력 아래에서 그룹을 위해 움직이는 ‘숨은 계열사’ 역할을 해왔다는 겁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이들 위장 계열사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는 재단 협력회사 운영담당이라는 직위까지 신설해 체계적으로 관리했죠. 내부 문서에는 이들 회사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외부에 공개하는 자료에서는 철저히 삭제하거나 누락하도록 지시한 정황까지 포착됐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은폐 시도로 보입니다.
재단이 총수의 ‘금고’가 되다
위장 계열사들은 어떤 일을 했을까요? 그 역할은 다양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그룹의 재무 지원과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입니다. 예를 들어, 핵심 계열사인 DB하이텍이 자금난에 빠졌을 때, 위장 계열사가 DB캐피탈로부터 대출을 받아 불필요한 부동산을 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재무 상태를 개선시켜 줬습니다.
더 직접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김준기 회장은 2021년 재단회사인 ‘빌텍’으로부터 개인적으로 220억 원을 대출받았습니다. 그리고 1년 뒤, 정확히 같은 금액으로 DB하이텍 지분을 취득했죠. 또한, 2022년 다른 계열사가 자금 부족으로 DB하이텍 지분을 팔아야 할 위기에 처하자, 위장 계열사가 똑같은 비율의 지분을 사들여 김 회장의 그룹 내 지배력을 유지시켰습니다. 공익을 위해 설립된 재단이 총수 일가의 사적 금고이자 방패막이로 전락한 셈입니다.
규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번 사건이 특별한 이유는 공정위의 접근 방식에 있습니다. 기존에는 지분율이라는 숫자에 주로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실질적 지배력’에 주목했습니다. 비록 지분 관계가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인사 교류, 자금 흐름, 거래 내역 등을 종합해 김 회장이 실질적으로 이들 회사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판단한 거죠.
이는 앞으로 다른 대기업집단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조사하는 데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공정위는 이번 결정이 위장 계열사 운영에 대한 강력한 경고장이라고 밝혔습니다. DB그룹 측은 공정위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며 검찰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제 검찰 수사를 통해 장기간에 걸친 위장 계열사 운영의 전모와 법적 책임 문제가 조금씩 드러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