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신화의 붕괴
중동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금값이 오히려 폭락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국제 금가는 10% 가까이 떨어지며 2011년 9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는데요,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이 같은 하락세는 투자자들에게 당혹감을 주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불리던 금의 공식이 무너지면서 시장의 혼란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금은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 때 투자자들이 돈을 몰아 가격이 오르는 패턴을 보여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움직임이 나타났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요구하며 공격을 경고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졌음에도 금값은 8거래일 연속 하락했습니다. 오히려 은값은 금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무려 41%나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긴축 공포가 압도한 시장 심리
이 같은 금값 폭락의 배경에는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긴축 정책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보다는 오히려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매파적 발언을 쏟아내면서 시장 심리가 급변했는데요, 금리는 금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는 무수익 자산이라, 금리가 오르면 그만큼 투자 매력이 떨어집니다.
실제로 연준의 3월 FOMC 회의에서 파월 의장은 고금리 장기화를 공식화했고, 점도표 상多数 위원들이 올해 금리 인하를 예상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기에 유가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더해지자, 투자자들은 안전자산보다는 현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죠. NH투자증권 황병진 연구원은 "긴축 베팅이 과도하게 이루어지면서 금을 포함한 위험자산에서 유동성 확보 매도가 쏟아졌다"고 분석했습니다.
달러 강세도 금값 하락을 부채질한 요인입니다. 일반적으로 달러 가치가 오르면 달러 표상 자산인 금의 가격은 하락壓力을 받기 마련인데, 현재 강달러 기조가 지속되면서 금 매도 심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결국 금리는 금값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금값의 미래, 단기와 장기 교차로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금값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경고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다른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씨티그룹은 금이 마치 위험자산처럼 거래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과거 리스크 오프 국면과 유사한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높은 세계 공공 부채와 지정학적 불안정 같은 근본적 요인들이 여전히 금가격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국내에서는 금값 하락이 오히려 중고 거래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모습도 보입니다. 당근 마켓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값싼 금을 사려는 구매자와 더 떨어지기 전에 팔려는 판매자들이 몰리면서 거래가 활발해졌죠. 일부 금은방은 매입 가격을 시세보다 높게 제시하거나 문의 고객에게 상품권을 주는 등 영업 전략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금값이 반등할지 여부는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와 중동 정세 향방에 달려 있을 전망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금의 하방 경직성이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지만, 당분간은 변동성이 커질 수 있으니 투자자들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