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사라진 실무진'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내부에서 심각한 인력 공백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10년간 통계를 보면,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증했다가 선거 후 급감하는 패턴이 고스란히 드러났는데요. 특히 휴직자의 81.1%가 핵심 실무를 담당하는 6~7급 직원들로 집계되어, 정작 바빠야 할 시기에 현장이 텅 비는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육아휴직이 아닌 질병 휴직이 선거철에 유독 쏠린다는 점입니다. 2022년 대선·지방선거가 겹쳤던 5월의 일반 질병 휴직자는 63명으로, 선거가 없던 전년 동월 대비 4.5배나 급증했습니다. 수도권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업무 강도가 높은 서울과 경기에서 전체 휴직자의 절반 가까이가 집중됐죠. 선관위는 격무와 악성 민원으로 인한 스트레스 탓이라고 해명하지만, 조직 내 기강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선관위 위원들의 실질적 역할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위원은 비상근직으로, 사무처 업무를 사후 추인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전문 교육 부재와 함께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비판 속에서,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 때도 위원들의 개표소 이동 시간과 겹쳐 모니터링 공백이 생겼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거센 책임론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실제로 부족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경기도에서는 23곳에서 용지가 떨어졌고, 김포시 일부 투표소에서는 20분가량 투표가 중단되는 혼란까지 빚어졌는데요. 원인은 중앙선관위가 지난해 12월 마련한 관리지침 때문입니다. 해당 지침은 구·시·군 선관위 의결로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선거인수의 50%까지 낮출 수 있도록 허용했고,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 이 기준을 적용하며 사태가 터졌습니다.
이번 사태를 두고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규탄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전국 180여 개 대학에서 비판 성명이 쏟아졌고, 건국대와 서울대, 전남대 등 16개 대학에서는 시국선언을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음모론 프레임을 넘어 재선거 실시와 함께 국정조사 및 특검 등 초당적인 책임 조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를 국가에 대한 불신과 기득권 정치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가 표출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투표지 부족 사태의 고의성 여부 등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다만 단순 업무 과실과 고의성 판단은 다른 문제라 법적 처벌 수위가 주목됩니다.
성역의 벽을 넘어선 개혁 논의
선관위가 직면한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2년 '소쿠리 투표' 사태나 지난해 투표지 반출 사건, 그리고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논란까지 반복적인 관리 부실이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외부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감사원의 직무감찰마저 제한되는 '성역'이었기에 책임 규명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앙선관위원장의 상근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법관 겸임이 관행이었던 만큼, 직무 전념을 위해 상근 체제를 법제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다만 정치권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고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호선 원칙' 설계가 관건으로 꼽힙니다.
전문가들은 선관위의 내부 감사 기구 독립성 강화와 국회 차원의 철저한 국정감사, 그리고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독립적 감시 기구 설치 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주요 선진국들도 선거관리기관에 대해 의회 보고나 감사원 감사를 통해 견제 장치를 두고 있는 만큼, 우리도 상시적인 외부 통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