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만에 나온 목소리
쿠팡의 김범석 의장이 드디어 목소리를 냈습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발생 약 90일 만인 지난 26일(현지시간),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처음으로 육성으로 사과문을 읽었습니다. 그는 "고객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한다"며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서면 입장문만 발표했을 뿐, 김 의장의 직접적인 육성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과의 무게는 그만큼 무거웠고, 그 배경에는 뚜렷한 실적의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고는 쿠팡 전 직원 한 명이 시스템을 악용해 3300만 개 이상의 사용자 계정 정보를 불법 조회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유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배송 주소 등 기본 개인정보였고, 금융정보나 비밀번호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회사는 설명했습니다. 해럴드 로저스 한국법인 대표는 "2차 피해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부연했지만, 이미 소비자 심리는 크게 흔들린 상태였습니다.
실적을 흔든 ‘탈팡’의 그림자
김 의장의 사과가 결코 형식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숫자에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쿠팡이 공개한 2025년 4분기 실적에서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7% 급감한 115억원에 그쳤습니다. 당기순손실은 377억원으로 적자로 전환됐죠. 매출은 12조 8100억원으로 전년보다는 11% 증가했지만, 직전 3분기와 비교하면 5% 감소했습니다. 이는 쿠팡이 2021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분기 매출이 전분기 대비 줄어든 것이었습니다. 원화 기준 매출 감소도 이때 처음 경험했습니다.
쿠팡은 이 실적 악화의 원인을 공식적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지목했습니다. 사고가 매출 성장률, 활성 고객 수, 유료 멤버십인 ‘와우회원’ 가입, 그리고 수익성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죠. 특히 사고가 본격 알려진 12월의 실적 타격이 컸습니다. 연간으로는 역대 최대 매출인 49조 1197억원을 기록하며 성장세는 이어갔지만, 50조원이라는 심리적 벽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4분기의 뚜렷한 주춤함은 ‘탈쿠팡(탈팡)’ 현상이 단지 여론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회복의 신호와 남은 과제
다만, 쿠팡이 내놓은 전망은 전망보다는 다소 밝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성장률에 대한 영향이 안정화됐으며, 2026년 1분기부터 회복세가 시작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회원 이탈률은 이미 최저 수준으로 회복됐고, 와우회원 신규 가입도 다시 증가 추세에 들어섰다는 설명입니다. 김범석 의장은 “더 잘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했습니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명확합니다. 첫째는 고객 신뢰를 어떻게 되찾을 것이냐는 점입니다. 사과는 시작에 불과하고, 세계적 수준의 사이버 보안 체계 구축이라는 약속이 구체적인 투자와 결과로 이어져야 합니다. 둘째는 수익성 회복입니다. 4분기 실적은 공격적인 투자 확대와 신사업 적자 확대와 같은 구조적 요인도 함께 작용했는데, 핵심 커머스 사업의 안정적 수익 창출과 신사업의 효율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성장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쿠팡의 도전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