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이번엔 참정권을 짓밟았다
6·3 지방선거 당일 전국 26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떨어져 투표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특히 서울 송파구는 상황이 심각했는데요. 잠실7동 2투표소는 오후 4시 46분부터 53분간 투표가 중단됐고, 마감 시간 연장 결정은 원칙적인 오후 6시에서 2시간 50분이나 지난 밤 8시 50분에야 내려졌습니다. 대기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던 유권자 12명은 결국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투표소마다 마감 시각이 18분에서 4시간까지 제각각이라 운영의 일관성조차 없었습니다.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실 이번 사태가 처음은 아닙니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중앙선관위 자료를 보면, 2022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대선 등에서도 투표용지 추가 배부가 있었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사용량을 넘기는 수준에 그쳤고 투표 중단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죠. 이번에는 140곳에 추가 송부하고 91곳에서 사용했으며, 26곳에서 투표가 아예 멈췄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준비 단계부터 드러났습니다. 전국 256개 시군구 선관위 중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높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송파구와 광진구 등 일부 지역은 대면 회의조차 생략한 채 서면으로 의결을 처리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우연이 아니라 참정권 보장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쌓여 만든 구조적 인재입니다. 현장 투표록에는 날인 누락, 일련번호 없는 용지 배부, 재개 시간 미기재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뒤섞인 행정 혼란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은 이제 시작
사태 수습을 위해 여러 갈래의 진상 규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앙선관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열흘간 조사를 마치고 19일 활동을 마감하는데요. 다만 조사 기간이 짧고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투표소 관리 공무원 9명을 소환해 당일 상황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했으며, 사실관계가 확정되는 대로 노태악 전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입니다. 국회 역시 45일간의 국정조사에 돌입해 구체적인 책임 소재를 가릴 예정입니다.
선관위는 재발 방지를 위해 AI 기반 상황관리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이미 보고가 이루어졌음에도 대응이 늦어진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술 도입보다 비상 상황에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기 대응 체계를 만드는 게 더 급선무라는 겁니다. 투표용지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선관위 시스템의 허술함이 이번에 뼈아프게 드러난 만큼, 책임 규명과 함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