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게 준비한 범행, 무너진 보호 장치
전자발찌를 차고도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 경찰의 보호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남양주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훈(44)씨는 범행 전 ‘전자발찌 추적 피하는 방법’을 검색하고, 피해자의 동선을 사전에 답사하며, 흉기와 창문을 깰 전동드릴까지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충동 범죄가 아닌, 전자감시 시스템을 의식하고 회피하려 한 치밀한 계획 범행의 정황입니다. 더 충격적인 건 경찰이 첫 신고 시점인 지난해 5월부터 김훈의 위험도를 ‘높음’으로 평가하고 맞춤형 순찰을 명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보호는 허점을 드러냈고, 피해자는 결국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늦고, 적고, 빈틈 많은’ 경찰의 맞춤형 순찰
피해자는 생전 최소 6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경찰은 ‘맞춤형 순찰’을 실시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운영은 부실했습니다. 피해자가 신고한 지 약 2주가 지나서야 순찰이 시작됐고, 총 50일간의 순찰 기간 중 실제 순찰이 이뤄진 날은 28일에 불과했습니다. 출퇴근 시간대에 집중해 달라는 피해자의 요청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순찰이 가해자 심리 위축에 효과적이라고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현장에서의 실행력은 크게 떨어졌던 겁니다. 피해자 차량에서 위치추적 장치가 발견된 후에도 순찰 공백은 이어졌고, 결국 경찰청은 사건 대응 과정 전반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습니다.
반복되는 비극, 시스템 개선의 시급함
이번 사건은 스토킹 범죄 대응의 구조적 한계를 또다시 드러냈습니다. 대검찰청은 사건 후 ‘스토킹 잠정 조치 체크리스트’를 배포하며 전자장치 부착 등 강력 조치를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합니다. 현재 스토킹처벌법상 경찰이 신청하는 잠정조치(전자발찌 부착·유치 등)에 대해 법원의 인용률은 3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즉, 경찰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조치를 신청해도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죠. 전문가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각 분리하는 현장 체포 등 보다 신속한 초기 대응과, 법원의 보수적인 잠정조치 심사 기준 완화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전자발찌는 기술적 보조 장치일 뿐, 그것을 돌파하려는 의지를 가진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인력과 프로토콜이 뒷받침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 연결고리가 끊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안타까운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