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에 숨은 '제2의 프로포폴'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최근 불법 마취제 에토미데이트를 밀수하고 유통한 일당 32명을 무더기로 검거했습니다. 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원액을 일반 액상 전자담배 카트리지에 담아 유통한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마약 단속이 강화되면서 나타난 신종 위장 수법이자, 이른바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위험 약물의 실체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실제로 경찰이 압수한 카트리지를 뜯어보니 내용물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투약자들은 이 약물을 사용한 뒤 좀비처럼 행동한다고 말하는데, 프로포폴과 유사한 수면 마취 효과를 내지만 중독성과 위험성은 더 클 수 있다는 점이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번 수사에서 시가 12억 원 상당의 에토미데이트 약 2kg을 확보했고, 이 과정에서 사귀던 여자친구의 친구를 통해 약물을 몰래 반입한 사례도 확인했습니다.
위장과 혼합이 만든 위험한 유통망
이번에 검거된 조직의 수법은 상당히 교묘했습니다. 이들은 해외에서 에토미데이트 원액을 들여와 일반 소비자용 액상 전자담배와 똑같이 생긴 카트리지에 주입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던지기' 방식, 즉 은밀하게 소분하여 거래했는데요. 전자담배라는 평범한 외형 뒤에 불법 마취제를 숨기니 단속망을 피하기가 훨씬 쉬웠던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약물을 섞어 쓴 점입니다. 경찰이 압수한 물건에서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은 동물용 진정제 성분이 추가로 검출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이들은 마약류 확보가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비규제 약물을 혼합해 물량을 늘리고, 약효를 더 강하거나 오래 지속시키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약물은 과거 가수 휘성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이 된 바 있는데, 당시와 동일한 성분이 이렇게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파장도 적지 않습니다.
풀리지 않는 규제 사각지대
사실 에토미데이트는 마약류 관리 대상이지만, 이번 사건에서 혼합된 동물용 진정제는 여전히 규제 밖에 있습니다. 경찰은 해당 성분을 마약류로 지정해달라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요청했으나, 의존성 연구 결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미국 사우스다코타주는 이미 지난 3월 이 성분을 규제 약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죠.
이처럼 국내에서는 아직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약물들이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사건이 던진 가장 큰 과제입니다. 마약 단속은 계속 강화되고 있는데, 범죄자들은 전자담배나 비규제 약물이라는 새로운 통로를 찾아 계속 진화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어떤 물질이 어떤 방식으로 위장 유통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제적 규제와 감시망 보강이 시급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