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출입구에 불을 붙였다
지난 20일 낮 12시 무렵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두 빌딩에서 연쇄 방화가 벌어졌습니다. 70대 남성 이모 씨가 특허법인이 입주한 신명빌딩과 한양빌딩에 잇따라 불을 지른 건데요. 이 사고로 19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변리사 한 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습니다.
당시 정황은 CCTV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이 씨는 기름통 두 개를 들고 4층 사무실로 올라가 통로에 인화물질을 붓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는데, 불길은 10초 만에 사무실 절반을 삼켰습니다. 출입구와 통로가 하나뿐인 구조였던 탓에 직원들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야 했습니다. 한 피해자는 유리창을 깨다 몸이 반쯤 밖으로 나갔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겁주려 했다"와 "죽이려 했다"
법원은 지난 22일 도주 우려를 이유로 이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그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죽이려는 게 아니라 겁주려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4년 전 특허법인에 사기를 당했다고 믿어 이를 세상에 알리려 했다는 겁니다.
반대로 피해자들의 증언은 정반대입니다. 생존자들은 이 씨가 특정 직원을 찾다가 안내 직원에게 "사무실로 들어가라"고 지시한 뒤 유일한 출입구에 불을 질렀다고 말합니다. 하나뿐인 출입구를 막아 죽이려 했다는 겁니다. 경찰은 그가 범행 전 인화물질과 라이터를 미리 구매한 점, 출소 후 감시망을 벗어나 있던 점 등을 근거로 살인미수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판례가 갈리는 지점
쟁점은 결국 살해의 고의가 인정되느냐입니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의 원 씨는 터널 통과 중 불을 질러 대피가 어려운 상황을 노린 점이 인정돼 살인미수로 징역 12년을 확정받았습니다. 해고 위기에 직원들을 위협한 사례에서도 살인미수 혐의가 인정됐습니다.
최근 5년간 현존건조물방화 사건 18건을 살펴보면 77.8%가 사적 갈등이나 보복에서 비롯됐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법정 최저형인 징역 5년보다 낮은 형이 선고됐는데, 살인미수나 치사 혐의가 더해지면 형량은 크게 뛰었습니다. 이 씨의 운명도 결국 '겁주기'와 '살해 의도' 사이에서 갈릴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