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를 덮친 AI 번역 '참사'
공영방송 KBS의 생중계 화면에 여성 비하 욕설이 자막으로 뜨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2일, NASA의 유인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 발사 생중계를 보도하던 중이었습니다. 관제센터와의 교신 내용을 AI가 실시간으로 번역한 자막에 ‘로저, 굴러, 이X아’라는 문구가 그대로 노출된 겁니다. 이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기체의 자세를 조정하라는 지시인 ‘Roger, Roll, Pitch’가 극히 부적절하게 오역된 결과였습니다. 시청자들은 공영방송의 심의와 검수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죠.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같은 방송에서 ‘컨트롤러(controller)’는 ‘변기’로, 다른 전문 용어들도 잇달아 엉뚱하게 번역되는 모습이 추가로 포착됐습니다. 실시간 스트리밍 중이어서 즉시 수정하기 어려웠고, 영상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며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KBS는 사고 인지 후 해당 영상의 되돌리기 기능을 금지하는 등 확산 차단에 나섰고, 곧바로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를 통해 공식 사과문을 게시했습니다.
전문 용어와 욕설, AI가 혼동한 이유
왜 AI는 기본적인 항공 용어를 욕설로 알아들었을까요? 그 핵심은 ‘발음의 유사성’에 있습니다. AI 번역 시스템, 특히 실시간 음성 인식 및 번역 엔진은 단어의 발음 패턴을 학습해 작동합니다. 문제가 된 ‘Pitch’는 [pɪtʃ]로 발음되는데, 이 소리가 특정 비속어의 발음과 유사하게 인식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AI는 단어의 맥락이나 전문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단순히 음성 데이터 패턴만을 따라 ‘가장 가능성 높은’ 일반 단어로 번역해버린 거죠.
이번 사례는 AI 번역 기술이 아직 가지는 명백한 한계를 보여줍니다. 자연어 처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어도, 인간의 언어는 맥락, 문화, 전문성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Pitch’는 야구에서는 투구, 음악에서는 음높이, 비즈니스에서는 사업 제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주 관제 교신이라는 특정 상황에서 이 단어가 지시어로 사용된다는 것을 AI가 판단하지 못한 겁니다. 당연히 KBS는 이번 오류의 원인이 AI의 발음 인식 오류라고 공식 설명했습니다.
논란의 확산과 남겨진 과제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방송 실수가 아니라, 공공 매체의 AI 기술 도입과 관리 책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은 “생중계라도 최소한의 필터링은 있었어야 한다”며 공영방송의 운영 소홀을 지적했습니다. 반면,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완벽하지 않은 기술을 실험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든 말든, 공신력이 생명인 공영방송에서 이런 오류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술 신뢰성에 대한 경종으로 작용한 건 분명합니다.
KBS는 재발 방지를 위해 AI 욕설 필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고, 관련 업체와 협의해 번역 정확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실시간 AI 자막 서비스의 전면 중단 여부보다는, 시스템 개선과 동시에 인간 검수자의 역할을 보완하는 ‘하이브리드’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사건은 언론사를 비롯해 금융, 고객센터 등 실시간 AI 번역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고려 중인 모든 산업 분야에 하나의 경고 사례로 기록될 겁니다. 기술의 편리함을 추구할 때, 그에 상응하는 정확성과 책임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함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