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속 선별적 통행 시작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특정 국가 선박만 선별적으로 통과시키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파키스탄 국적 유조선 '카라치'호가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켠 채 해협을 무사히 통과했는데요. 이는 전쟁 발발 이후 이란 선박을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선박이 이란 영해를 따라 이동하며 현지 정권의 승인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인도 선박에 이어 두 번째 주요 사례로, 이란이 미국 주도의 대이란 포위망에 균열을 내기 위한 '갈라치기'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란 외교장관은 일찌감치 호르무즈 해협이 미국과 그 동맹국에게만 폐쇄되어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대화를 통해 협조하지 않는 국가의 선박에 대해서는 안전한 항행을 보장하겠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왔죠. 인도의 경우 정상 간 통화 이후 국영 해운공사 소속 LPG 운반선 2척이 이란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해협을 통과한 바 있습니다. 중국 선박들도 일부 항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란의 선별 기준이 주로 미국과의 거리에서 결정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흔들리는 국제사회의 대응
이러한 이란의 전략 앞에서 국제사회의 대응은 분열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압박하고 있지만, 유럽 연합(EU) 내부에서도 입장이 갈리는 모습입니다. 튀르키예,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들은 이란과의 협상을 통해 에너지 수송 경로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죠. 미국 재무장관이 점점 더 많은 선박이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 같은 국제적 공조의 균열이 실제로 통행량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한편 미국은 상반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한편으로는 동맹국에 군사적 압박을 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의 원유 수출을 사실상 방임하고 있는 겁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이란이 매일 약 1억 4천만 달러의 원유 수출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평균과 거의 동일한 수준입니다. 미국 재무부 고위 관계자는 에너지 공급 안정을 위해 현재의 수출 수준을 용인하고 있다고 설명했죠. 이런 이중적 태도는 동맹국들로부터의 신뢰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역 국가와 시장의 불안한 반응
이란의 선별적 봉쇄와 국제사회의 혼란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 국가들과 글로벌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라크는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차단될 경우를 대비해 선제적으로 산유량을 하루 430만 배럴에서 120만 배럴로 대폭 감축했습니다. 비축 시설의 부족이 이런 결정의 배경이었는데요. 동시에 이라크는 페르시아만의 바스라 항 대신 키르쿠크-세이한 송유관을 통해 튀르키예로 수출하는 대체 경로 재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는 해협 의존도를 줄이려는 지역 국가들의 필사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에너지 시장의 반응도 예민합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과 트럼프 행정부의 엇갈린 메시지에 시장이 긴장하면서,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3~4% 가량 상승한 상태입니다. 통행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일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해법 없이 지속되는 불확실성은 유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죠.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유조선은 총 17척에 불과합니다. 이는 평소 하루 평균 125척이 통과하던 것과 비교하면 극히 낮은 수준이라,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