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한 장에 담긴 법원과 청와대의 갈등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등을 대법관 후보로 서면 제청한 사건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기존 관례를 무시한 일방적 통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고 있고, 재제청을 포함한 법적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서면 제청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이 공석으로 남은 지 209일 만에 이루어진 조치라는 점에서도 논란이 큽니다. 대법원 측은 협의가 계속 이루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서면으로 제청했다는 입장이지만, 청와대는 면담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을 조율했을 뿐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국회 증인 채택과 헌법상 권한의 경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오는 31일 조희대 대법원장과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을 긴급 현안질의 증인으로 채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은 대법원이 국회와 대통령실을 무시했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의 사퇴나 탄핵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사전 탄핵 청문회라며 강력히 반발하며 회의장을 퇴장했습니다. 이들은 제청 경위를 밝히려면 조 대법원장이 아닌 이재명 대통령이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갈등의 핵심은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권한의 경계에 있습니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사전 조율이나 반려 절차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그동안 관행으로 유지되던 절차가 이번에 표면화된 것이죠.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 시절에는 대면 제청이 11일이면 이루어졌던 반면, 이번에는 209일이 걸렸다는 점도 이중잣대 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법행정 체제 개편론과 향후 전망
이번 논란을 계기로 민주당 일각에서는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위원회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다시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바꾸고 사법행정 권한을 분산하자는 취지인데요,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사법부 장악 시도라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당장 다음 달 이흥구 대법관의 퇴임이 예정되어 있어 결정이 늦어지면 대법관 공백 사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대법관 증원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인선이 향후 사법부 운영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청와대가 재제청을 요구할 경우, 손봉기 후보자는 청문회 전에 낙마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결정이 향후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사이에 어떤 선례를 남길지는 두고 봐야 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