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이 만든 정치적 파장
추석 연휴 극장가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영화 '암살자(들)'가 개봉 직후부터 큰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197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육영수 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탄에 숨진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제목에 복수형을 쓰면서 문세광 외에 다른 배후가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죠.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29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허진호 감독 등 제작 관계자 4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영화가 권력기관 개입을 연속적으로 암시해 관객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배후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입니다. 제작진은 당일 입장문을 내고 공개된 기록을 바탕으로 한 극영화이며, 가설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사자명예훼손, 법적으로 성립할까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이 영화가 사자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제작사에 중국계 자본 400억원이 투자됐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국정감사에서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법리적으로는 간단하지 않은데요. 사자명예훼손은 고소인이 고인의 친족이나 자손이어야 하고, 실제 고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유족이 직접 해야 가능합니다.
과거 판례도 제작진에게 유리한 환경입니다. KBS 드라마 '서울 1945'와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이승만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지만, 허구적 묘사와 주관적 의견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며 무죄가 확정된 바 있죠.
검열인가, 책임론인가
논란은 정치권 전체로 번졌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창작의 자유를 존중하되 역사적 상처를 재가공한 예술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제작진의 유가족에 대한 사죄를 요구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문체위 국감에 허진호 감독을 부르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에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가 영화검열단위냐'며 반대했습니다. 과거 감독들이 국감에 나온 사례는 특정 작품이 아니라 산업 전반 논의였다는 점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논란의 파장은 관객과 창작자에게도 닿았습니다. 구독자 400만 명이 넘는 영화 유튜버 지무비는 관련 영상을 삭제했고, 배우 김고은과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온라인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 사이의 균형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이 논쟁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