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제청 파문이 낳은 입법 공방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과의 사전 조율 없이 대법관 후보를 서면으로 제청한 일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이른바 '서면 제청' 논란이 불거진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법원조직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고,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현재 갈등의 핵심에는 김민기 수원고법 부장판사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청와대가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 판사를 선호해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다만 김 판사의 배우자가 헌법재판관인 탓에 부부가 각각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맡게 될 경우, 재판소원에서 제척이나 기피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인사 청탁 과정에서 대법원장과의 이견이 발생했고, 결국 사전 조율 없는 서면 제청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으로 번졌습니다.
국민의힘은 이 문제의 본질이 인사 고집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민주당과 청와대가 성찰 없이 법을 고쳐 제청권까지 제한하려 한다고 비판했는데요.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드는 후보가 제청되었다고 법을 개정하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겁니다. 이는 헌법 제104조가 정한 삼권분립의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라는 지적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여준 선례
이번 논란 속에서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2003년 최종영 당시 대법원장이 제시한 후보들에 대해 노 대통령은 다양성과 개혁성 부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며 임명 거부까지 시사했습니다. 하지만 최종영 대법원장이 판단을 고수하자 노 대통령은 결국 이를 수용했는데요. 이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존중한 헌정사상 모범적인 선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 측은 서면 제청 자체가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1년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직접 만남 없이 이상훈 법원행정처 차장을 서면 제청해 임명된 사례가 있어, 정부의 주장은 사실관계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1987년 개헌 이후 대법관 인사는 대법원장 제청, 국회 동의, 대통령 임명의 3단계를 거치도록 설계됐는데요. 만약 사전 조율이라는 관례에 헌법적 구속력을 부여한다면, 이는 실질적인 대통령 지명제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삼권분립의 경계를 다시 묻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은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대법관 구성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른 정권보다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최고법원의 독립성과 외관상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민의힘은 이번 법 개정 시도가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해 줄 아군을 대법원에 배치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습니다.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단순한 법 조항 문제가 아니라, 헌법 정신 자체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향후 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여야 간의 치열한 법제도 공방은 불가피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