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가 거부한 '더 강한 중립'
스위스에서 중립성을 헌법에 못 박으려던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으로 부결됐습니다. 지난 9월 27일 치러진 투표에서 반대 70.15%, 찬성 29.85%로 나타났는데요. 투표율은 47.06%였고, 26개 칸톤 전역에서 반대가 우세했습니다.
개헌안의 핵심은 '영구적이고 무장된 중립'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군사 동맹 가입과 무력 충돌 개입을 금지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 없이는 교전국에 대한 경제 제재에도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죠. 통과됐다면 스위스의 대외 정책 운신 폭이 크게 좁아질 수 있었던 겁니다.
흔들린 중립, 그 배경
스위스의 중립은 1815년 빈 회의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고, 1907년 헤이그 협약에서 법적으로 정의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중립을 지켰지만, 나치가 약탈한 금을 예치하고 유대인 난민 수천 명을 돌려보낸 과거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사과로 이어졌죠.
그런데 스위스 헌법에는 중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정부가 사안별로 유연하게 해석해 온 겁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스위스 정부가 유럽연합의 대러 제재를 대부분 채택하자, 우파 성향 스위스국민당(SVP)과 단체 '프로 슈바이츠'가 전통적 중립이 흔들렸다며 개헌안을 발의했습니다. 반면 연방정부와 녹색당, 사회민주당, 중앙당, 자유민주당 등 대부분의 정당은 중립이 고립이나 무관심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맞섰습니다.
남은 과제와 전망
결과 발표 후 이냐치오 카시스 외무장관은 이번 부결이 "중립에 반대한 투표가 아니다"라며 스위스가 앞으로도 중립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안별로 제재 참여 여부를 판단하고, 필요하면 다른 나라와 협력해 안보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중립 자체를 거부한 게 아니라 현 정부의 중립 이행 방식에 찬성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같은 날 진행된 식량안보 국민투표도 72% 반대로 부결되면서 기존 정책 기조가 유지됐는데요. 직접 민주주의를 택한 스위스에서 이번 투표는 중립의 의미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여전히 유연한 해석에 기대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