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과 주식에 쏠린 자금, 가계대출 다시 급증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말 기준 잔액은 778조 7,869억 원으로, 한 달 사이 3조 8천억 원가량 불어났는데요.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2조 2,800억 원 넘게 늘며 지난해 8월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고, 마이너스통장 잔액도 44조 4,600억 원을 기록하며 2022년 8월 이후 최대치를 찍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체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110조 원을 넘어 2023년 3월 이후 약 3년 반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은행들이 올 초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연간 관리 목표치는 이미 1조 원 이상 초과되었고, 일부 은행은 목표의 190%에 달하는 대출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사실상 은행권의 총량 규제가 시장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규제를 뚫고 나온 주택 수요와 빚투 열기
가계대출이 늘어난 배경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주택가격전망지수는 지난 7월 127을 기록하며 2021년 9월 이후 약 4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는데요. 이로 인해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갭투자 수요까지 유입되면서 대출 잔액을 끌어올렸습니다.
동시에 증시 변동성도 한몫했습니다. 코스피가 5,200선까지 밀리면서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잇따라 발동되자, 일부 투자자들은 이를 저가 매수 기회로 삼아 마이너스통장을 털었습니다. 7월 마지막 주 엿새 동안에만 마통 잔액이 1조 7천억 원 이상 급증했는데, 이른바 '빚투' 수요가 여전하다는 방증입니다.
은행들은 대출 문턱을 한층 높였습니다. KB국민은행은 주담대 한도를 6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줄였고, 다른 은행들도 대출모집인 접수를 중단하거나 모기지 보험 가입을 제한했는데요. 하지만 시장의 자금 수요가 워낙 강하다 보니 이런 조치들이 실수요자들의 불편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8월 첫 영업일에는 잔금 납부를 앞둔 실수요자들이 몰려 '오픈런' 현상까지 벌어졌고, 일부는 2금융권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전해졌습니다.
안전자산으로 돌아선 자금과 남은 과제
흥미로운 점은 대출이 늘어나는 동시에 예금 시장에서도 극명한 자금 이동이 포착되었다는 겁니다. 7월 한 달 동안 요구불예금은 52조 원 넘게 빠져나가며 2019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정기예금에는 24조 9천억 원가량이 유입되며 2022년 10월 이후 최대 증가세를 보였는데요. 이는 은행권의 금리 인상 영향으로 투자 대기성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역머니무브' 현상으로 풀이됩니다.
한편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지난달 62.3%까지 올라 2014년 이후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대출 한도가 제한되자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변동형 상품을 찾는 수요가 몰린 결과인데, 이는 향후 금리 변동 시 차주들의 상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총량 관리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청년, 신혼부부,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를 위한 핀셋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장의 자금 흐름이 워낙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규제와 실수요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