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점 넘어도 대출이 안 되는 시대
최근 은행 창구에서 신용점수가 900점을 훌씬 넘어도 대출이 거절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한때 고신용의 상징이었던 900점이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처럼 느껴지는데요. 이른바 신용 인플레 현상 때문입니다. 금융권 데이터를 보면 지난 5월 기준 평균 신용점수는 962.6점에 달했습니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낮은 4분위 점수조차 923.6점까지 올라갔으니, 이제는 점수가 높은 게 아니라 그냥 평균인 셈입니다.
당연히 은행들은 내부 대출 심사 기준을 함께 끌어올렸습니다. 전체적인 신용도가 올라간 만큼, 은행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리스크 관리 기준은 더욱 까다로워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점수 자체는 올랐지만 체감 대출 문턱은 오히려 더 높아진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고신용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조차 1금융권에서 퇴짜를 맞고 있으니, 급전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습니다.
점수는 올랐는데 왜 더 힘들까
이번 신용 인플레의 핵심은 점수의 상향 평준화입니다. 1분위 평균이 960.6점에 달할 정도로 전 계층의 신용등급이 동시에 개선되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기존의 신용평가 체계가 리스크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은행들이 대출 승인 기준선을 독자적으로 높이면서, 신용점수라는 지표가 대출 시장에서의 실질적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반대로 금융 거래 이력이 거의 없는 사회초년생이나 저소득 계층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들은 신용점수 자체가 낮게 나오거나 아예 평가 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는데, 전반적인 기준 상향은 이들의 대출 접근성을 더욱 좁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신용점수라는 단일 지표로는 실제 상환 능력과 금융 소외계층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드러난 겁니다.
온라인 쇼핑 이력도 신용이 되는 시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비금융 정보를 활용하는 신용성장스코어 도입입니다. 세금 납부 내역, 국민연금 가입 정보, 통신비 납부 이력은 물론이고 온라인 쇼핑몰 구매 정보까지 데이터베이스화해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입니다. 신용카드 사용 이력이나 기존 대출 실적이 없는 신파일러들도 실제 생활 속 납부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금융회사는 이 스코어를 내부 평가 지표와 결합해 대출 한도와 금리를 책정하게 됩니다. 이미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모형에서 비금융 정보를 활용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일반 금융취약계층까지 폭을 넓힌 셈입니다. 물론 이 제도가 실제 대출 시장에 안착하려면 데이터 정확성과 금융회사들의 수용도를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신용 인플레로 점수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상환 능력을 다각적으로 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