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 넘어선 퇴직연금, 금융권 쟁탈전 불붙다
지난해 말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이 501조 4천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보다 16% 이상 급증한 규모인데요. 제도별로는 확정급여형(DB)이 228조 원으로 가장 많았고, 확정기여형 및 기업형 IRP(DC)가 141조 원, 개인형 IRP가 130조 원을 각각 차지했습니다.
시장이 커지자 금융권의 고객 유치 경쟁도 치열해졌습니다. NH농협은행은 원리금비보장형 부문에서 5대 은행 중 수익률 1위를 기록했고, 하나은행은 모바일 앱으로 실시간 ETF 호가와 맞춤 알림을 제공하며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증권사 중에서는 키움증권의 움직임이 눈에 띕니다. 리테일 주식 중개 강자로 불리는 키움은 ISA와 개인연금을 중심으로 WM 잔고를 불려왔고, 퇴직연금 시장에도 첫해 수수료 전액 면제와 AI PB 서비스로 뛰어들며 연간 순이익 1조 원 시대를 열었습니다.
제2의 국민연금을 꿈꾸는 기금형 도입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최근 기금형 퇴직연금이 노후 보장의 핵심축인 '제2의 국민연금'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금형은 여러 사업장의 자산을 하나로 모아 전문 기관이 통합 운용하는 방식으로, 가입자의 선택 부담을 덜어줍니다.
이런 제도 도입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 DC형 퇴직연금의 운용 현실이 너무 소극적이기 때문입니다. 2025년 말 기준 DC형 적립금의 67%가 원리금보장형에 묶여 있어 수익률 제고가 어렵습니다. 디폴트옵션 제도가 있지만, 이를 선택한 자금의 88%가량마저 다시 원리금보장형으로 흘러가 제도 취지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이에 노사정은 금융기관 개방형,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 등 다양한 기금형 모델을 논의 중입니다. 다만 사외적립 의무화에 따른 시장 확대에 대비해 감독 체계 강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장기 투자의 힘, 어떻게 살려야 할까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하려면 장기적인 시각에서 운용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합니다. NH투자증권 이재경 부사장은 퇴직연금을 서민이 시간의 힘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코스피200, 코스닥150 등 지수 중심의 ETF를 적립식으로 꾸준히 모으는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실제로 잦은 매매를 하는 투자자보다 지수형 ETF를 매수 후 보유하는 쪽이 수익률이 훨씬 높게 나타납니다. 포트폴리오는 한국과 미국 채권 및 주식으로 구성한 뒤, 연 1~2회 정도 리밸런싱만 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개별 종목의 단기 대박을 노리기보다는 국가의 성장성에 투자하는 게 오히려 현명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많은 가입자가 여전히 '손실 공포'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점입니다. 원리금보장형에 익숙한 탓에 위험자산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한데요. 20~30년 뒤에 쓸 돈인 만큼 일시적 시장 조정에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본시장 원리를 가르치는 등 금융 교육 강화도 장기적으로 뒷받침돼야 할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