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설비 줄이고 고부가 키우는 여수 1호
정부가 국내 최대 석유화학 거점인 여수 국가산업단지의 사업재편을 본격화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여천NCC,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DL케미칼 4개사가 참여하는 여수 1호 프로젝트를 최종 승인했는데요. 이번 재편의 핵심은 중국 기업들의 대규모 증설로 심화된 공급 과잉을 해소하고, 범용 제품 중심의 낡은 생산 구조를 고부가가치 소재 위주로 바꾸는 것입니다. 당연히 범용 제품 위주의 구조에서는 중국의 저가 공세를 당해낼 수 없었고,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지난 몇 년간 수익성 악화와 적자성 수출의 악순환을 겪어왔습니다.
먼저 여천NCC 2호기와 3호기의 가동을 중단해 에틸렌 생산능력을 139만 톤 줄였습니다. 기존 352만 톤에서 213만 톤으로 약 40% 감축하는 조치인데요, 이는 정부가 제시한 전체 감축 목표의 상당 부분을 채우는 규모입니다. 남은 1호기는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과 통합하고,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각자의 사업 부문을 현물출자해 3사가 지분을 각각 33%씩 나눠 갖는 통합법인을 설립했습니다.
7,000억 원 지원과 기업들의 자구 노력
이번 재편이 실현되기까지는 정부와 금융권의 대규모 지원이 뒷받침됐습니다.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은 고부가 전환 신규자금 4,500억 원과 수입보험 2,000억 원을 포함해 7,000억 원 이상의 지원 패키지를 마련했습니다. 여기에 채권 상환을 2029년 말까지 유예하는 등 4조 4,000억 원 규모의 부채 부담 완화 조치도 함께 이뤄졌습니다. 나프타 관세 면제와 취득세 감면 같은 세제 혜택도 제공됐습니다.
기업들 역시 총 8,000억 원대의 자구책을 내놓았습니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각각 2,725억 원씩 유상증자를 진행해 기존 부채를 상환했고, 고부가 제품 전환과 인프라 구축에 2,532억 원을 추가로 투자했습니다. 의료용 저밀도 폴리에틸렌과 폴리올레핀엘라스토머 같은 고부가 소재 비중을 30~5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정부는 이런 구조조정을 통해 2029년부터 영업이익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수 2호와 울산 재편, 아직 풀지 못한 숙제
여수 1호가 마무리됐지만,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대산 1호와 여수 1호를 합치면 NCC 생산능력이 약 250만 톤 줄어들어 공급 과잉이 상당 부분 해소되겠지만, 여수 2호와 울산 산단 재편은 여전히 산 넘어 산입니다.
여수 2호는 LG화학과 GS칼텍스의 설비 통합이 핵심인데, 자산 가치 평가를 두고 이견이 있어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울산은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지난달 기계적 준공을 마치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는데요. 180만 톤 규모의 신규 설비를 가동할 경우 기존 업체들의 감축 분담 기준이 어떻게 잡힐지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여수 1호는 시작에 불과하며,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진짜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울산을 비롯한 나머지 산단들의 신속한 참여와 합의가 필수적입니다. 정부는 연내에 추가 사업재편안이 나올 수 있도록 기업들과의 논의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