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가 막히자 경제가 숨을 쉬지 못한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보고,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6천 피를 향해 달리던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겁니다. 이 모든 불안의 시작은 중동, 정확히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비롯됐습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격화되면서 세계 기름 수송로의 70%가 통과하는 이 해협이 사실상 봉쇄 위기에 놓이자, 국제 유가는 한 달 사이 75달러에서 111달러로 치솟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동맥이 막히는 사태입니다.
이러한 공급 충격은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100%에 이르는 국가에 즉각적인 타격으로 다가옵니다. 고유가는 수입 물가를 올리고, 이는 환율 상승과 맞물려 이중고를 형성하고 있죠. 이미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1495원을 넘어섰고, 증권가에서는 155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공급망 마비가 불러온 고물가·저성장의 악순환
초크포인트의 중요성은 갑자기 부각된 게 아닙니다. 호르무즈 해협, 수에즈 운하로 연결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 말라카 해협 등은 세계 무역의 80%를 차지하는 해상 운송의 핵심 경로입니다. 여기가 막히면 선박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우회해야 하고, 이로 인한 운임과 보험료 폭등은 전 세계 상품 가격을 밀어올립니다. 특히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불안정해지면, 연간 583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물류 대란의 영향은 에너지와 원자재를 넘어 소비재 전반으로 퍼져나갑니다. 울프리서치의 분석에 따르면, 고유가로 인한 소비자들의 가처분 소득 감소는 달러제너럴, 월마트 같은 소매업체의 매출 감소로 직접 이어지고 있습니다. 필수품 외의 지출이 위축되면서 경제 활동의 선순환이 끊기기 시작한 거죠. 더욱이 대만해협 같은 지정학적 긴장 지역까지 불안해지면, 세계 시스템 반도체의 37%를 공급하는 대만의 물류가 차질을 빚어 전자제품 생산까지 마비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제3의 오일 쇼크인가, 과장된 우려인가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크게 떠오르는 단어는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침체되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경제 현상이죠. IMF 총재는 유가가 10% 상승하면 세계 물가가 0.4%포인트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경우 경제 성장률이 0.8%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충격이 1970년대 오일 쇼크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하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비관적인 건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과거와 달리 주요국의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고 석유 의존도가 낮아졌으며, 중앙은행들의 물가 안정화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과거만큼의 충격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합니다. OPEC+가 추가 생산을 약속하고 미국이 수송로 보호에 나서는 등 국제적인 안정화 노력도 진행 중입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유가가 108~120달러 선에서 오르내릴 것으로 전망하며, 지나치게 높은 가격은 결국 수요를 감소시켜 자연스러운 조정을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고유가와 고환율의 그림자는 당분간 한국 경제를 따라다닐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