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2026 서울국제도서전이 지난 24일 코엑스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개장 시간이 되기도 전에 수천 명이 몰려 입장 대기줄이 생겼고, 일부 부스는 한 시간 만에 굿즈가 품절될 정도였는데요. 캐리어를 끌고 온 방문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SNS에서는 추천 부스와 필수 구매 리스트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책을 사러 오는 공간을 넘어 하나의 문화 축제로 자리 잡은 모습입니다.
이번 도서전의 인기는 이른바 '텍스트힙' 열풍과 맞닿아 있습니다. 20대와 30대의 독서율이 세대별로 가장 높게 나타난 가운데, 젊은 세대는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에 출판사들도 변화를 줬는데요. 예스24는 독서 시간을 달리기 거리로 환산하는 '리딩런' 부스를, 밀리의서재는 현관과 주방, 거실로 꾸민 '밀리하우스'를 선보였습니다. 민음사는 책과 향기를 결합한 감각적인 공간을 연출했고, 푸른숲은 세탁소, 보림은 식당 컨셉으로 부스를 꾸며 방문객들의 발길을 잡았습니다.
질문하는 인간을 찾아서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인간선언 호모 두두리'입니다. 한국 고대 신화 속 대장장이 이름에서 따온 이 단어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인간을 뜻하는데요. AI가 즉각적인 답을 내놓는 시대에, 스스로 질문하고 사유하는 인간의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입니다.
25일 열린 북토크에서 참여 작가들은 인간다움에 대해 각자의 시선을 덧붙였습니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AI와 달리 인간은 실패를 감수하며 보증 없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고, 이제니 시인은 완벽함보다 결함과 취약함이 오히려 인간다움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화길 소설가 역시 완벽한 결과보다 덤비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건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자세, 바로 그것이 AI 시대에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무기라는 점입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
이번 도서전은 출판업계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줍니다. 주요 출판사 72곳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3.4% 감소하는 등 업황이 부진한 상황에서, 도서전은 독자층을 확대하고 시장 회복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웹소설과 웹툰에 쏠린 관심을 종이책과 다양한 서적으로 분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물론 과도한 인파로 공간 부족과 대형 출판사 중심의 쏠림 현상이 지적되기도 했는데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들섬에서는 '서울제대로도서전'이 동시에 열리며 보다 여유로운 책놀이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AI가 길을 안내하는 세상에서 길을 잃고 우연한 발견을 하는 즐거움, 그리고 책 앞에 서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시간. 아마 이런 경험이야말로 기계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