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서울로, 이틀간의 행보
스위스 외무장관 이냐치오 카시스가 평양과 서울을 잇달아 오가며 한반도 외교의 새로운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10월 29일 평양에 도착한 카시스 장관은 이튿날 평양의사당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회담했습니다. 조용원 노동당 비서와도 담화를 나눴고, 주체사상탑을 참관한 뒤 평양을 떠났는데요. 일정을 마친 그는 곧바로 서울로 넘어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정연두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을 잇달아 만났습니다. 평양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루 만에 서울에서 설명하는, 상당히 빠른 행보였습니다.
52년 만에 문 연 외교사무소
이번 방문의 표면적 목적은 평양 주재 스위스 외교사무소 개소식입니다. 스위스는 1974년 북한과 수교한 뒤 1997년부터 개발협력청 사무소를 운영했지만,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력을 철수했습니다. 올해 10월 19일 사무소를 다시 열면서 인도주의 기능에 정치적 역할을 더한 외교사무소로 격상한 겁니다. 수교 52년 만에 실질적 외교 공관이 문을 연 셈입니다. 카시스 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최 외무상과 외교사무소 재개, 정치적 관계 정상화, 정치적 대화 재개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반도와 유라시아의 안보 현안도 폭넓게 다뤘다고 전했습니다.
중립국이 가진 특수성
스위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시 중립국이라는 지위입니다. 6·25전쟁 정전협정 이행을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 일원이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학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북한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대화 상대인 셈입니다. 한국 정부는 위 실장과의 면담에서 스위스가 북한과의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점을 평가했고, 정 본부장은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설명하며 대북 소통 확대에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G20 참석차 미국에 있어 장관급 회담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외교가에서는 당장 남북이나 북미 대화의 창구로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북한이 스위스를 통해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겁니다. 결국 이번 방문의 의미는 대화의 물꼬 자체보다, 채널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