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한 단위로 사오는 게 27% 늘었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8월 무역지표가 심상치 않습니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119.9를 기록하며 전년 동월 대비 27.1% 올랐는데요. 1988년 통계 편제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입니다. 같은 양을 수출해 벌어들인 돈으로 사올 수 있는 수입품이 1년 새 27% 넘게 늘었다는 뜻이죠.
지수 수준 자체도 2007년 4월 이후 19년 4개월 만에 최고치입니다. 수출물량이 25.9% 늘어난 덕에 소득교역조건지수는 60.0% 뛰었습니다. 수출 가격과 물량이 동시에 밀어올린 결과라, 실질 구매력 개선 폭은 통계 편제 이래 가장 컸습니다.
반도체가 만든 숫자, 환율이 거든 효과
이번 개선을 이끈 건 단연 반도체입니다. 원화 기준 DRAM 수출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53.4%, 플래시메모리는 250.6% 뛰었습니다. 수출가격 전체 상승률 39.6%가 수입가격 상승률 9.9%를 크게 앞선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환율도 한몫했습니다. 두바이유가 배럴당 76.75달러에서 88.75달러로 15.6% 올랐는데도, 원/달러 환율이 1,497.4원에서 1,406.3원으로 6.1% 내리면서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2.4% 하락했습니다. 유가 부담을 원화 강세가 상쇄한 겁니다. 수입물가는 이로써 3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습니다.
남은 변수는 수출물가와 유가
다만 반대편 숫자도 함께 봐야 합니다. 원화 기준 수출물가지수는 183.23으로 전월보다 3.7% 내렸는데, 2022년 12월 이후 3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입니다. 환율 하락이 공산품(-3.7%), 화학제품(-5.3%), 운송장비(-5.4%) 가격을 끌어내린 탓입니다. 계약통화 기준 수출물가는 오히려 2.2% 올랐으니, 원화 강세가 만든 착시에 가깝습니다.
수출금액지수가 75.8%, 수입금액지수가 23.1% 오른 만큼 경상수지 흑자 폭은 더 커질 전망입니다. 실질무역손익을 통해 실질국민총소득(GNI)도 밀어올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물론 고공행진 중인 국제유가가 언제까지 원화 강세로 상쇄될지는 미지수입니다. 교역조건 개선이 반도체와 환율이라는 두 변수에 기대고 있는 만큼, 흐름이 얼마나 이어질지가 관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