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바꾼 일상, 저수지 바닥 드러나다
전국 곳곳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4억 7천만 톤의 물을 가두던 옥정호는 저수율이 18%까지 떨어졌고, 평소 잠겨 있던 붕어섬 주변 물길이 모두 말라붙었습니다. 장성호 역시 저수율이 26%대로 급감하며 농업용수 공급을 7일간 전면 중단하는 극약처방이 내려졌습니다. 운문댐도 24% 수준에 머물며 가뭄 '심각' 단계에 접어들었죠.
이제 가뭄은 농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북 청도의 한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세탁기 대신 개울가로 나가 빨래 방망이를 들어야 했고, 헹군 물은 아까워 묫자리나 논에 쓰고 있습니다. 경남 지역에는 국가소방동원령까지 내려져 전국에서 소방차 200여 대가 급파되었고, 육해공군 병력과 군부대 급수차까지 투입되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남부지방의 일상은 이미 달라진 지 오래입니다.
'7일 단수' 넘어 비상 대응 체계 가동
가뭄의 여파는 작물의 중요한 성장기와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벼는 출수기에, 콩은 개화기에 접어든 시점이라 물 수요가 가장 많은데요. 하지만 논밭은 바싹 말라붙었고, 농민들은 계곡 물웅덩이를 찾아 양수기를 끌고 다니며 물을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13년 만에 양수기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댐에서 공급되는 물이 필요량의 70%에 그치자, 한 번 사용한 물을 다시 끌어올려 재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제주에서는 당근 파종이 늦어지고 작물이 시들어가자 시에서 8개 지구의 저수조 증설에 나섰지만, 기존 시설의 규모가 작아 속 시원한 대책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임시 방편적인 조치로는 극한 상황을 버티기에 역부족인 게 현실입니다.
기후 재난 상수화, 근본 대책은 어디에
사실 이번 가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재난은 아닙니다. 전국 3,422개 저수지의 99.6%가 10년 빈도 이하의 보통 가뭄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는데, 이번 영남 가뭄은 20년 빈도의 '독한 가뭄'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 위기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기존 물 관리 인프라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죠.
문제는 근본 대책 마련이 더딘 데 있습니다.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등 국가 전략 산업의 용수 확보가 시급한 상황인데, 정권에 따라 댐 건설 계획이 추진됐다가 취소되는 등 일관성 없는 정책이 이어졌습니다. 댐 신설은 후보지 선정부터 완공까지 10~20년이 걸리는 장기 사업이라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미래의 물 부족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물론 댐 건설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상수도 정비, 하수 재이용, 해수 담수화, 지하수 활용 등 다각적인 물 관리 전략이 함께 가야 합니다. 제주시가 추진하는 것처럼 소규모 저수조 확충과 더불어 AI를 활용한 첨단 관리 체계 구축도 병행되어야겠죠. 기후 재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대비하지 못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