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AI 인용
이재명 대통령이 공소청장·중수청장의 국무회의 배석 제한 논란을 두고 인공지능 제미나이의 답변을 인용하면서 논쟁이 커졌습니다. 대통령은 반대 의견을 “위헌적 억지”이자 “궤변”이라고 규정했는데요. 국가 원수의 발언이 AI의 문장을 빌려 공식 판단처럼 전달되면서, 정치적 책임과 AI 활용의 경계를 둘러싼 논의가 함께 불붙었습니다.
사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AI가 이미 일상의 판단 도구로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과제와 업무는 물론 심리 상담, 투자, 투표 지침까지 검색하듯 묻는 시대입니다. 문제는 AI가 내놓는 문장이 중립적인 정보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의 인용은 그 문장에 국가권력의 무게를 더했습니다.
질문이 바꾼 답
핵심 쟁점은 AI의 답이 질문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배석 불가론이 위헌인가’라고 물을 때와 ‘배석이 바람직한가’라고 물을 때 제미나이는 서로 다른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야당 의원과 일부 언론이 다른 질문을 던져 상반된 답변을 받아낸 사례도 공개됐고요.
이런 현상은 AI가 지식을 갖고 있어도 맥락을 이해하고 일관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질문의 전제가 바뀌면 답의 방향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겁니다. AI를 정치적 판단의 근거로 삼을 때 검증 절차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AI를 설득만 앞세우는 소피스트에 비유하는 논평도 나옵니다.
AI는 도구인가 행위자인가
논의는 AI의 지위로 이어집니다. 유발 하라리는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행위자’로 봐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실제로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도록 설정된 AI와 대화한 유권자의 정치 성향이 평균 3.9점, 2.3점씩 이동했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캐나다와 폴란드에서는 평균 10점의 변화가 보고됐고요.
민주주의는 빠른 문장보다 절제된 숙의를 필요로 합니다. AI와 SNS가 결합된 말은 즉각적이고 감정적이기 쉽습니다. 대통령의 AI 인용이 제도적 토론을 대체할지, 보완할지는 결국 정치권의 책임 있는 운용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