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이유 갱신 거절, 그 뒤에 벌어진 일
전세 세입자가 계약갱신을 요구했는데 임대인이 "내가 직접 살겠다"며 거절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세를 놓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법원은 이런 경우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실거주를 내세워 갱신을 거절해 놓고 곧바로 재임대에 나선 행위는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사건은 2020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A씨는 B씨 소유의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를 보증금 6억6000만 원에 빌렸고, 계약 기간은 2020년 9월부터 2022년 9월까지였습니다. 2022년 5월 A씨가 계약갱신을 요구하자 B씨는 실거주를 이유로 거절했고, A씨는 집을 비워야 했습니다.
예측 가능했는지, 불가피했는지
B씨는 2022년 9월 전입신고를 마치고 이듬해 2월 귀국해 실제로 거주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 2월, 보증금 8억2000만 원에 제3자와 새 전세계약을 맺고 그해 4월 아파트를 넘겼습니다. A씨는 갱신이 받아들여졌다면 2024년 9월까지 살 수 있었는데 재임대가 불가피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쟁점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5항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였습니다. B씨는 다가구주택 임차인 6명이 보증금 반환을 요구해 자금 압박이 컸고, 대출이나 매각을 하면 양도소득세 부담도 컸다며 어쩔 수 없었다고 맞섰습니다. 1심은 이를 예측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보고 A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반대로 2심은 달랐습니다. 보증금 반환 채무는 이미 존재하던 것이어서 갱신 거절 당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재임대가 불가피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결국 B씨는 3,079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물게 됐고, 대법원도 원심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임대인이 짊어진 증명책임
이번 판결에서 눈에 띄는 건 대법원이 정당한 사유의 기준을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갱신 거절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는지, 제3자에게 임대하는 것이 정말 불가피했는지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겁니다. 더불어 이런 사정을 입증할 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동안 실거주를 이유로 한 갱신 거절을 둘러싼 분쟁은 적지 않았는데요. 이번 결정으로 임대인은 거절 사유를 사후에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습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갱신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고, 임대차 시장의 실거주 요건 다툼에도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