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내내 마주한 경제의 벽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년 임기를 마치고 20일 공식 퇴임했습니다. 그는 퇴임을 앞둔 여러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한 가지 점을 강조했습니다.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만으로 경제 성장과 안정을 이루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취임 직후 맞닥뜨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 중동 전쟁까지, 그의 임기는 예측 불가능한 연이은 위기 속에서 금리 인상과 인하를 오가며 시장 안정을 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은 그에게 정책의 영향력에 한계가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그는 외환시장을 예로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으로 어느 정도 환율을 관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거주자들의 해외 투자 활동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커졌다는 겁니다. 이른바 ‘서학개미’ 현상이 대표적이죠. 그는 이 용어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 발언이 오히려 국민연금 해외투자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공론화하고 제도 개선을 이끌어낸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발언하는 중앙은행’이 남긴 발자취
이창용 총재는 취임 전 ‘조용한 절간’으로 불리던 한국은행을 ‘발언하는 중앙은행’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입니다. 통화정책의 고유 영역을 넘어 부동산, 가계부채 문제에까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아 ‘오지랖 총재’라는 별명도 얻었죠. 그의 임기 동안 한국은행은 주요국보다 먼저 인플레이션을 2%대 목표 수준으로 되돌렸고, 20년간 상승하던 가계부채 비율을 하락세로 전환시킨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한국형 포워드 가이던스를 도입하고 20편 이상의 구조개혁 보고서를 발간하며 정책 소통과 자문 기능을 강화한 점도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힙니다.
그러나 그의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2024년, 물가 상승률이 2%대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은 결정은 ‘실기했다’는 맹렬한 비판을 불러왔습니다. 그는 헬스장 사우나에서까지 시민들로부터 질책을 들었을 정도로 압박을 느꼈지만, 이후 외환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 속에서 당시의 신중한 결정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고 말합니다.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는 ‘정책기조 전환’ 발언이 시장을 혼란스럽게 한 것을 꼽았습니다.
이제는 구조를 바꿀 때
퇴임을 몇 시간 앞둔 기자회견에서 이창용 총재는 한국은행이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 역할을 지속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저출생·저성장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 주거, 균형 발전 등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통화정책은 이러한 중장기 과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거죠. 그는 중동 전쟁으로 인해 외환·금융시장이 완전히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떠나는 것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도 토로했습니다.
그의 임기를 돌아보면, 예상치 못한 충격에 대한 대응보다 더 중요한 화두를 던져준 것 같습니다. 경제 시스템 자체가 변했고, 그에 따라 정책의 역할과 한계도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는 퇴임 후 3년간 국내에 머물며 연구와 자문 활동을 통해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경제의 벽을 마주한 중앙은행 총재의 퇴임 선언은, 앞으로의 경제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