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불모지에서 세계 1위까지
2026년 10월 23일 경기 수원 선영에서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6주기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UAE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오전 8시 40분경 묘소를 찾아 두 차례 절을 올리고 묵례했는데요. 전영현·노태문 사장을 비롯한 현직 사장단 50여 명과 전직 경영진 100여 명도 잇따라 참배했습니다. 실제 기일인 10월 25일이 일요일이라 이틀 앞당겨 치러진 겁니다.
추도식이 끝난 뒤 이재용 회장은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사장단과 오찬을 나눴습니다. 오는 28일에는 같은 곳에서 추모 음악회가 열릴 예정인데요. 박재홍 피아니스트와 한재민 첼리스트, LA 필하모닉 등이 무대에 오르고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과 이부진·이서현 사장 등 유족도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500억 불량품 태운 품질 경영
고인이 남긴 가장 큰 자산은 역시 반도체입니다. 1974년 냉장고와 TV에 집중하라는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사재를 털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한 게 출발점이었죠. 1983년 도쿄선언 이후 18개월 걸리던 공장을 6개월 만에 완공하고 64K D램을 내놓았고,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꺼내든 신경영은 회사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놓았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양적 성장에서 질 중심으로 전환했고, 라인스톱제와 7·4제로 불량을 뿌리 뽑았습니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15만 대가 넘는 불량 휴대전화와 팩시밀리를 망치로 부순 장면은 지금도 품질 경영의 상징처럼 회자됩니다.
AI 시대에 다시 소환된 결단
그 선택의 가치는 50년 뒤 더 또렷해졌습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발하면서 HBM과 서버용 D램, 고용량 낸드 수요가 급증했고, 트렌드포스 기준 삼성전자는 2026년 2분기 D램 39.4%, 낸드 29.3% 점유율로 세계 1위를 지켰습니다. 1996년 디자인 혁명으로 내놓은 보르도 TV와 2010년 갤럭시S, 5대 신수종 사업도 같은 맥락의 선제 투자였습니다.
경영 성과만 남긴 건 아닙니다. 2021년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2만3천여 점의 문화재와 미술품은 '이건희 컬렉션'이 되어 국내에서만 350만 명이 관람했고, 영국박물관에서는 42년 만의 한국미술 특별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도체와 문화유산, 두 축으로 남긴 자산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이제 삼성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