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인근에서 시작된 불길
산불은 지난 7일 저녁 9시 40분쯤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입천리 야산에서 시작됐습니다. 초기 진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불길은 월성원전으로 이어지는 송전선로가 밀집한 지역을 휩쓸었습니다. 당국은 원전 시설로의 확대 가능성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상정하며 비상 체계에 돌입했죠. 인근 주민들은 발화 당시 송전탑에서 ‘펑’하는 폭발음이 들렸다고 진술했고, 이는 화재 원인에 대한 첫 번째 단서가 되었습니다.
강풍과 건조한 날씨는 진화 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송전선로가 빽빽하게 늘어선 지역에서는 헬기의 안전한 접근이 제한됐고, 고압선 위로 정확하게 물을 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산림항공본부 관계자는 “표적을 맞히는 데 어려움이 컸다”고 설명할 정도였어요. 이로 인해 산림당국은 산불 대응 1단계를, 소방당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며 총력전에 나섰습니다.
재발화와 사투, 20시간 이후의 시련
첫 번째 고비는 발생 20시간 만인 8일 오후 6시께 넘었습니다. 주불 진화가 선언됐지만,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강풍이 불어닥치자 낙엽 아래 숨어있던 불씨가 되살아나 2시간 만인 오후 8시 20분께 안동교차로 인근에서 재발화한 겁니다. 불길은 급경사지를 타고 빠르게 번졌고, 당국은 긴급히 주민 68명을 마을회관으로 대피시켰습니다.
재발화된 불은 야간의 강풍을 타고 더욱 거세졌습니다. 현장에는 시속 5.6m의 서북서풍이 불었고, 헬기 투입이 어려운 지형 조건까지 겹치며 지상 진화팀의 몸부림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주불을 다시 잡는 데만 3시간이 추가로 소요됐고, 잔불 정리를 위한 전투는 9일 오전까지 이어졌죠. 산림당국은 해가 뜨자마자 헬기 17대를 추가 투입해 잔존하는 불씨를 일일이 제거해야 했습니다.
원인은 송전탑? 책임 공방과 향후 과제
42시간 만인 9일 오전, 산불은 공식적으로 ‘완진’ 선언을 받았습니다. 임야 56ha(축구장 약 76개 규모)가 잿더미로 변했지만,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남은 것은 화재 원인과 책임에 대한 질문입니다. 주민들의 일관된 증언은 송전탑에서의 스파크를 지목하고 있지만, 한국전력은 “아직 원인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산림당국은 관계기관과의 합동 조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건은 원전 등 국가 주요 시설 인근의 송전선로 밀집 지역이 갖는 화재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특히 장기간의 건조 특보 아래에서 전기적 요인으로 인한 화재가 대형 산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재확인됐죠.
당국은 완진 이후에도 2~3일간 뒷불 감시 체계를 유지하며 재발화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진화의 전투는 끝났지만,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또 다른 과제는 이제 막 시작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