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너지 동맥이 마비되다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순식간에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이란이 걸프 해역에서 유조선을 공격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위협하자, 국제 유가는 단숨에 뛰어올랐는데요.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1달러, 브렌트유는 85달러를 돌파하며 2024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전 세계 석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해협의 통행량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게 떨어지면서, 공급 차질에 대한 공포가 유가를 밀어올린 겁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유조선 호위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군사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란 측은 즉각적인 봉쇄는 아니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모든 옵션을 검토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죠.
한국 유조선 7척 발묶인, 국내 수급에 적신호
이 위기는 한국에 직접적인 타격을 안겼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한국 국적의 유조선 7척이 갇혔는데, 이 중 3척에는 원유 200만 배럴씩 실려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하루 원유 소비량의 3일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한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그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옵니다. 이 루트가 막히는 것은 우리 경제의 대동맥이 끊기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죠. 이 영향은 이미 국내 주유소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안 심리로 인한 주유 수요 증가와 선제적 가격 인상이 겹치며, 휘발유 리터당 가격이 3년 7개월 만에 1,800원대를 돌파했습니다. 정부는 이를 '바가지 요금'으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에 나섰습니다.
총력 대응 모드에 돌입한 정부와 기업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석유 부문에 대해 자원안보 위기경보 1단계 '관심'을 발령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중동 상황 대응본부'를 가동해 수급 상황을 매일 점검하고 있으며, 필요시 정부 비축유를 방출하는 등 비상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해 주유소의 불합리한 가격 인상에 대해 '최고가격 지정' 검토를 지시하는 한편, 중동 체류 국민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군용기와 전세기 동원을 지시했습니다. 기업 현장에서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 거점인 여천NCC는 중동발 나프타 공급 차질을 이유로 불가항력을 선언하며 생산 설비 가동률을 낮출 계획입니다. 석유화학 업계는 원료 가격 급등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구조적 공급 과잉 상황에서 고정비 부담만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죠. 미국 CNBC의 짐 크레이머는 이런 불확실성이 주식시장의 관망세를 유도할 것이라고 분석하며, 중동 사태 외에도 AI 칩 수출 규제 강화 같은 다른 변수들도 시장을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의 위기는 단순한 유가 변동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리스크 관리라는 훨씬 더 근본적인 도전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