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숙원사업의 전환점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과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곧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필요성을 강력히 요청했고, 미국 측에서 이를 받아들여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이는 한국의 원자력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입니다.
현재 한국은 26개의 상업용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지만, 핵연료는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고리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스템 포화율이 95%에 육박하면서 재처리 권한 확보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일본식 모델로 권한 확대 추진
협정 개정의 핵심은 일본이 채택한 '포괄적 사전 동의' 방식과 유사한 모델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원자력 시설 운용 범위와 절차를 사전에 협의해 정해두는 방식으로, 현재 한국이 미국의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한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2015년 개정된 현행 협정은 미국과의 합의 시 20% 미만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지만,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미국의 핵 확산 우려로 사실상 제한되어 왔습니다. 이번 개정을 통해 한국이 핵연료 확보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전망입니다.
관세협상과 맞물린 복합적 협상
한미 간 협상은 원자력협정 개정뿐 아니라 관세협상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 장관은 "데드라인보다는 윈윈 패키지 구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을 진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특히 투자 구조, 방식, 수익 배분 등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미국 측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에 대해 현금 투자 비중을 낮추는 조건으로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협상팀이 사흘 만에 재차 미국을 방문한 것은 이러한 쟁점 해결을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APEC 정상회의서 합의문 채택 기대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관련 합의문이 채택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주선언문'이라는 공동선언문을 통해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방안이 논의될 예정입니다. 조 장관은 "자유무역 이슈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2018년 이후 중단되었던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HLBC)를 재가동하여 실질적인 협상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핵무기 전용 가능성 등 민감한 문제로 인해 실제 협정 개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술적 기반과 비확산의 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농축 권한 확대가 필요합니다. SMR은 순도 19% 수준의 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인데요. 전문가들은 탈원전 기조 하에서 재처리 및 농축 허용이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개발 의도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재처리 과정에서 추출되는 플루토늄이 핵무기 연료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술적 기반 강화와 국제 비확산 체제 수호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이번 협상의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
과거 한미 원자력협정 타결에 약 4년 6개월 동안 11차례의 협상이 소요된 만큼, 이번 협상도 신중하게 진행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