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불안정한 정세가 국제 유가를 들쑤시며 글로벌 산업 전반에 원가 상승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단순한 유가 변동을 넘어 원자재 수급과 물류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의 경험을 떠올리며, 국내 건자재 업계를 비롯한 여러 산업이 비상 모드에 들어섰습니다. 이번 사태는 한 산업에 머무르지 않고, 생산에서 운송까지 전방위적인 비용 압력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건설 현장부터 느껴지는 고통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는 건자재 업계입니다. 시멘트, 철근, 레미콘 등 건설 현장의 필수 자재 가격이 오를 것이란 우려가 높습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원유 가격이 10% 상승하면 주택 건축 비용은 0.09% 증가하는데요. 숫자만 보면 미미해 보일 수 있지만, 시멘트 생산 원가의 25%를 차지하는 유연탄 가격이 함께 오르고, 아스팔트 등 다른 비금속 광물 비용도 덩달아 뛸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걱정은 깊습니다. 레미콘 업계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습니다. 경유 가격 상승으로 인한 운송비 증가입니다. 대부분의 운송비 상승분은 제조업체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라, 최근 건설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 적자 폭이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철강 업계는 직접적인 수출입 영향은 적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자동차나 조선 같은 주요 전방 산업의 위축으로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물류와 운송의 연쇄 작용
유가 상승의 충격은 생산 현장을 넘어 물류와 운송 네트워크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항공업계는 이미 ‘험난한 길’을 예고했습니다. 연료비가 운영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항공사들에게 고유가는 즉각적인 수익성 압박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호황을 누리던 항공사들도 불확실한 정세 앞에서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해상 물류 또한 안심할 수 없습니다. 발틱운임지수(BDI)는 최근 다소 안정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지난해 평균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전문가들은 중동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에 차질이 생기고, 이로 인해 벌크선 운임이 다시 뛰면서 철강 원료나 곡물 수입 비용까지 덩달아 오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나의 해협 불안이 전 세계 물류비 상승으로 이어지는 연쇄 고리가 시작된 셈입니다.
위기 속에서 주목받는 지역
그런데 이 같은 글로벌 불안 속에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지역에 대한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중남미입니다.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고유가 지속 시 중남미의 경제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는 지역으로 꼽았는데요. 브라질, 가이아나, 콜롬비아 같은 에너지 순수출국들은 유가 상승으로 외화 유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풍부한 석유 매장량뿐 아니라 구리, 리튬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원자재를 보유한 중남미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즉 ‘니어쇼링’ 흐름에서도 미국과의 지리적 근접성 덕분에 투자 유치에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게다가 과거 오일쇼크 때와 달리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해, 금융 시장의 변동성에 대한 방어력도 어느 정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동의 불안이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가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건설 현장의 원가, 배를 타고 이동하는 화물의 운임, 비행기의 연료비, 그리고 지구 반대편 대륙의 경제 전망까지 모두 얽히고설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사태의 조기 종식을 바라지만, 동시에 장기화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복잡한 국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