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사태 뒤에 숨은 근무 태만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 투표용지가 바닥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관내 투표소 15곳에서 최장 105분간 투표가 중단되었고, 사회복무요원까지 긴급 투입되는 혼란이 이어졌는데요. 당시 상황을 두고 단순한 현장 실수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실 이번 사태 뒤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총체적 관리 부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선거 관리의 최종 책임자였던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의 근무 태만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노 전 위원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고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계획입니다.
'이틀에 한 번꼴' 출근, 하루 2시간 근무도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를 보면, 노 전 위원장은 지난 3월 3일 대법관 퇴임 이후부터 선거일까지 법정 근무일 60일 중 고작 34일만 청사에 출근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출근한 셈인데요. 출근한 날조차 오전 9시 이전에 나타난 경우는 단 하루뿐이었고, 14일은 오후에 출근했으며 21일은 오후 6시 이전에 퇴근했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본투표를 일주일 앞둔 5월 27일입니다. 오후 3시 5분에 출근해 오후 5시 30분에 퇴근했으니, 실제 청사에 머문 시간은 2시간 25분에 불과했습니다. 3월 11일에는 1시간 55분만 근무한 기록도 확인되었고, 선거 당일인 6월 3일에도 오전 9시 30분에야 출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6월 3일부터 9월 30일까지 장기 결근 계획까지 세워 둔 상태였으니, 사실상 직무를 방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비상임직이라는 해명, 책임론은 여전히
물론 중앙선관위 측은 반박할 여지가 있습니다. 위원장이 비상임직이라 정해진 출퇴근 의무가 없으며, 3~4월에는 실시간 보고가 필요한 현안이 많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한 과거 위원장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출근 횟수가 많았다는 주장도 덧붙였는데요. 선거 당일 늦은 출근은 오전 9시에 투표를 마친 뒤 바로 출근한 것이라는 해명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노 전 위원장은 대법관을 퇴임한 뒤 사실상 전업으로 선관위원장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비상임직이라는 이유만으로 근무 시간이 불규칙하고 짧은 것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특히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맞물려 책임론이 거세지자 노 전 위원장은 6월 5일 사의를 표명했고, 현재 시민단체들은 직무유기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상태입니다. 향후 검경 수사를 통해 근무 태만과 선거 관리 부실 사이의 구체적 인과관계가 밝혀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