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기술자’ 이근안 사망, 진실과 화해를 묻는 과거사의 무게

문연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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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달 전 수정 · 2026년 3월 26일 오후 8:50

발행: 2026년 3월 26일 오후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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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았던 이근안 전 경감이 88세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과거 가혹 행위에 대한 법적 심판과 불완전한 사과, 피해자들의 지속되는 고통을 다시 조명하게 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부고를 넘어, 과거사 진상 규명과 사회적 치유라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의 무게를 일깨우고 있다.

한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 떠나다

군사정권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전 경감이 8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고문 사건, 남민전 사건, 서울대 무림사건 등 주요 공안 사건에서 전기고문, 물고문 등 가혹 행위를 주도한 인물입니다. 그의 사망 소식은 단순한 부고를 넘어, 한 시대의 잔혹한 역사와 그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고 치유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질문을 다시금 환기시켰습니다.

민주화 이후인 1999년 자수하기까지 약 11년간 도피 생활을 했던 그는, 법정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출소 후에는 목사 안수를 받고 종교인의 길을 걸으며 과거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애국’ 운운하는 발언이나 고문 수사를 ‘예술’에 비유하는 인터뷰로 논란을 지속시켰습니다. 그의 생애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단면과, 그 과거와의 결산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입니다.

사과와 반성, 진정성에 대한 끝나지 않은 논쟁

이근안 씨의 사망에 대한 반응은 첨예하게 갈립니다. 한편에서는 그가 복역 후 목사가 되어 참회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실제로 재판 과정과 출소 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특히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그의 사과가 진정성이 부족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납북 어부였던 김성학 씨는 이근안 씨의 전기 고문으로 척추에 중상을 입어 장애를 얻은 직접적인 피해자입니다. 그는 “사과 한마디 없었다”며 허탈함을 드러냈습니다. 피해자들의 분노와 아쉬움은 단순히 법적 처벌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인정을 갈구했음을 보여줍니다. 민병두 전 의원 역시 고문 피해자로서, 그가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많은 마음을 달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가해자의 개인적 반성과 사회적 책임의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게 엮여있는지를 드러냅니다. 법적 심판을 받고 종교적 속죄의 길을 걸었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고통과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깁니다.

사라진 가해자, 남겨진 과제의 무게

이근안 씨의 죽음으로 하나의 생애는 막을 내렸지만, 그가 남긴 과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최근인 2024년 6월에는 그가 관여한 사건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는 과거의 인권 유린 행위가 단지 역사책의 기록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삶에 지금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그의 사망 소식에 “가해자의 죽음이 만행을 지울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고히 하고, 과거의 잘못을 성찰해야 함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문학진 전 의원은 그가 ‘국가를 위해’라는 변명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이근안 씨의 일생과 그의 죽음이 던지는 화두는 명확합니다. 과거사의 진상 규명과 청산은 단순한 역사 정리가 아니라,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사회적 화해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그의 사망이 그 과정에 마침표가 되기보다, 진실과 책임, 그리고 치유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더욱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