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 정착촌 둘러싼 동시다발적 움직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온도 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9월 9일,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라냐에서는 이스라엘 대사관 개관식이 열렸는데요. 이는 최근 슬로베니아 정부가 친이스라엘 노선으로 급선회한 결과입니다. 같은 날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캐나다 등이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제품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유럽 내부부터 중동까지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디온 사르 외무장관은 개관식에서 이스라엘을 서구 문명의 최전선이라 칭하며 슬로베니아 정부의 결정을 환영했습니다. 사실 이 대사관 개설 자체가 외교적으로 이례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건데요. 슬로베니아는 불과 몇 달 전까지 EU 안에서 이스라엘에 가장 비판적인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로베르트 골로브 전 총리 시절 팔레스타인 지지를 공공외교의 핵심으로 삼았던 정부가 180도 방향을 튼 것이죠.
슬로베니아의 급선회와 내부 반발
지난 6월 집권에 오른 야네즈 얀샤 총리는 취임 첫날부터 팔레스타인 기를 철거하고 반이스라엘 정책을 모두 폐기했습니다. 과거의 경제적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취지인데요. 하지만 수천 명의 시위대가 대사관 앞에서 폐쇄를 요구하며 격렬하게 항의했고, 골로브 전 총리와 자유운동당은 이 조치가 국제법 위반의 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회에서는 얀샤 총리와 토네 카이저 외무장관의 퇴출을 추진하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정부는 이번 개설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양국 외무장관은 교육과 과학, 문화 협력 합의서에 서명하고 비즈니스 포럼을 열었는데요. 서안지구 정착촌 문제로 유럽이 들끓는 와중에 슬로베니아가 이스라엘의 교역 파트너로서 가능성을 열어준 셈입니다.
정착촌 제재와 중동의 환영
슬로베니아의 대사관 개설과 정반대로, 영국은 서안 불법 정착촌에서 생산된 물품의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이어 프랑스와 캐나다가 동참했고, 덴마크와 포르투갈 등 9개국이 지지 의사를 밝혔는데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튀르키예, 이집트 등 아랍·이슬람 8개국 외무장관들은 공동 성명으로 이 조치를 환영하며 다른 나라들의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불법 정착 활동 가담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제재가 도덕적으로 왜곡되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등 12개국이 지지한 '두 국가 해법'의 필요성에도 아랍권이 힘을 싣고 있지만, 슬로베니아 같은 EU 회원국은 이스라엘과의 양자관계를 우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사실 서안지구 문제는 단순한 외교적 갈등을 넘어 각국의 국내 정치와 경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슬로베니아의 경우 과거 경제적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얀샤 총리의 구상이 국내에서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고, 영국 등의 수입 금지는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 재편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앞으로도 서안지구를 둘러싼 각국의 상반된 행보는 국제사회의 분열을 더욱 부각시킬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