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화가를 추적한 결정적 단서
세계적으로 이름만 알려진 미스터리 예술가 뱅크시의 정체가 25년 만에 구체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로이터 통신이 17일 공개한 장편 탐사보도에 따르면, 뱅크시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51세 그라피티 예술가 로빈 거닝엄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신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2008년 '데이비드 존스'로 법적으로 개명한 상태인데요. 이 이름은 영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로, 대중 속에 자연스럽게 숨어들기 위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로이터는 부동산 기록, 회계 문서, 국경 통관 자료, 법원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추적해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체 밝힌 열쇠는 우크라이나
이번 조사의 결정적 단서는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된 뱅크시의 벽화였습니다. 뱅크시는 당시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키이우 인근 호렌카 마을의 작품을 공유하며 진위를 인정했는데요. 로이터는 이 작품 제작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의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마스크를 쓴 남성 두 명이 벽화를 빠르게 완성했고, 그 중 한 명은 팔과 다리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는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상을 입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자일스 둘리와 정황이 맞아떨어집니다. 로이터는 둘리가 영국 밴드 '매시브 어택'의 로버트 델 나자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입국했으며, 그들과 동행한 세 번째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존스'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여권 정보상의 생년월일이 로빈 거닝엄과 정확히 일치하면서, 수년간 이어져 온 추측에 강력한 증거가 추가된 셈입니다.
익명성, 비판의 자유를 지키는 방패인가
뱅크시 측은 로이터의 보도에 대해 공식적인 확인이나 부인을 하지 않은 채 입장을 유보했습니다. 대신 뱅크시의 변호사 마크 스티븐스는 조사 내용의 일부 정확성을 부인하면서도, 익명성 유지의 본질적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뱅크시가 오랫동안 집착적이고 위협적인 행동에 시달려 왔으며, 실명이 공개될 경우 권력에 대한 예리한 비판적 표현을 계속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뱅크시는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의 '꽃을 던지는 사람'부터 경매장에서 자폭하는 '풍선 소녀'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배달해왔습니다. 이러한 작품 활동의 근간에는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 자리 잡고 있어, 신원 보호는 단순한 미스터리 만들기가 아닌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실용적 선택으로 해석됩니다. 아직 공식적인 확인은 없지만, 로이터의 폭로가 뱅크시의 예술적 위상과 미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